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나라밖의 행차를 유난히 즐겨왔고, 늘 “성공적인 국제외교무대 데뷔”를 이루어냈던 것은, 당시에 이를 보도한 신문 몇 장들만 들춰보아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정작 사정이 어떻게 되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노상 밖에만 나가면 파격적인 환대를 받고 다자간 정상회의에서는 각국의 정상들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나려고 줄을 서곤 했다. 적어도 우리의 언론은 늘 그렇게 전했다.

오죽했으면 옛 군부독재시절의 한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한 호텔에서 취재기자들에게 “이렇게 밖에서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내가) 잘 한다고 하는데 안에서는 무엇들을 몰라서 골치가 아프고 들어가기가 싫다.”라고 노골적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나는, 어떤 대통령은 영국 여왕에게서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영접을 받았고, 어떤 대통령이 바덴바덴에서 했다는 “통일은 대박이지요.”라는 한마디가 실로 전 세계를 감동시킨 줄 알았다. 그들이 쓰는 외국어 한마디에 그 나라들의 외교 정책이 모두 녹아떨어지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과거가 그랬다하더라도 이번은 좀 달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오늘 현재 대한민국의 시급한 외교의 과제는, “전 세계가 동의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그 속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속적, 현실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인 보장책의 도출”, “오직 수출입에 의지해 살아가는 나라로서 목숨 걸지 않으면 안 되는 국제자유무역 분위기의 조성”, “한·중·일 간의 과거 역사의 합리적, 합법적 청산”, 정도로 요약될 것이다.

물론 국제적인 갈등들을 풀기 위해서 그 중심이 되어야 하는 유엔이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오늘 지구촌 외교의 현실 속에서, 이제는 또 하나 정상들 간의 의례적인 만남이 되어버린 데다가 경제문제에 의제를 한정하는 G20 같은 정례 미팅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달리 국제무대에서 독자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기가 힘든 우리로서는 이러한 무대를 더욱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하였어야할 것이다.

미·중·일·러의 정상들과, 이미 사전에 각자 양보할 수 없는 의견이 정립되어 있는 남북 간의 비핵화 문제와 사드 배치의 문제를 그곳에서 다시 중점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은 애당초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어라고하든 북측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선은 넘어버렸고 그것을 되돌릴 만한 이유를 우리가 만들어내기도 어렵다는 것은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이미 정설이 아닌가. 결국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의 당위(當爲)를 만들어 주고 있는 중이고 이를 충분히 예측하는 중국은 북측의 핵을 자신들의 지배권에 속하는 전진 배치된 무력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이 불 보듯 읽히고도 남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의 “북조선은 우리의 혈맹이다”라는 단호한 재확인과 그들의 사드배치 철회 요구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똑바로 이해하라는 협박을 끌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득이 될 것인가. 미국의 주유엔 대사가 “중·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라고 분명히 쐐기를 박는 때에, 트럼프의 “한국,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는 심드렁한 반응과 아베의 형식적인 “한·미·일 공조”라는 지극히 원칙을 넘지 않는 외교적 수사 속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이 따로 무엇이 있을 것인가.

정말로 우리는 미·일·중·러가 모르는, 북측과 교환할 수 있는 특별한 대화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을까. 만일 우리가 숨긴 카드가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상봉, 대북방송 중단,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재개, 남북평화협력지대 개설, 인도적 지원의 강화…, 이런 것들, 그뿐이라면, 정말 그들을 놀라게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정말로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한 것일까.

우리 대통령은 4개국 정상보다는 오히려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멕시코, 터키의 정상들과 부지런히 만나, 실효적으로 안보협력과 자유무역에 대한 공동 대응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4강을 압박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적 실익을 얻어내려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도의 네루는 “결국 외교정책은 경제정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도가 적절히 경제정책을 확립할 때까지는 그 외교정책은 막연하고 미완성이며, 고려한다는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외교라는 것은 실제로 늘 그래왔다. 그러한 평화로운 말의 성찬 밑에서 인류는 늘 죽고 죽이는 처절한 역사를 써 왔던 것이다.

최근 북측 IOC 위원 장웅이가 씹어 뱉었다는 “천진난만한 소리”라는 말이 자꾸 목에 걸린다. 우린 정말 “레드라인”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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