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옹솥, 물솥, 소여물솥….
냉장고, 세탁기 처럼 신혼부부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항목중에 이런 솥들이 포함되던 시절이 있었다. 새 살림을 차리는 젊은이들은 강화 교동같은 섬에서도 찾아와 무려 쌀 반가마 무게(40kg씩)가 나가는 가마솥부터 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작은 옹솥까지 몇 벌을 주문하곤 했다.

“양 손에 큰 가마솥 두 개를 번쩍 들어올려서 날랐지. 무거운 줄도 몰랐어. 날카로운 솥 언저리에 손이며 다리를 숱하게 베기도 했는데 이제는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어. 등판을 크게 댄 저 자전거가 그때 솥을 나르던 거야.” 가게 앞에 세워놓은 오래된 자전거를 가리킨다.

오정신씨(64·인천시 동구 송림1동). 열여덟 청소년기에 주물 솥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으니 역사가 46년이다. ‘배다리 솥 주물’이라는 빛바랜 간판을 내건 지금의 자리까지 네 차례 이동이 있었으나 배다리를 벗어난 적은 한번도 없다. 포장이 안돼 있어 비만 오면 발이 푹푹 빠졌지만 각지에서 물건을 사려고 몰려드는 이들과 파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옛날의 배다리·중앙시장 풍경부터, 현대화했지만 오히려 오가는 이 뜸해진 오늘의 모습까지 한 자리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근처에 주물 솥 가게가 네 군데 있었는데, 나만 남고 다 떠났지. 양은솥, 전기밥솥 같은 편리한 솥이 나오는데다 부엌이 전부 바뀌었으니 무겁고 큰 옛날 솥을 누가 쓰겠어.” 나무를 때지 못하게 철저히 막던 70년대 초반부터 솥 가게에 냉기가 불어닥쳤다. 동종업자들은 업종을 바꾸거나 아예 폐업을 했지만, 그는 쉽게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절집에서나 쓸 만한 초대형 가마솥에서부터 앙증맞은 쇠솥, 난로, 고기구이판, 맨홀뚜껑 등 쇠로 만든 주물제품 수 백 가지가 가득 차 있는 가게안. 가게는 경제상황에 따라, 혹은 시대 유행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가마솥설렁탕 등 가마솥에 푹 곤 음식이 인기를 끌거나, 귀농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질 때는 반짝하다가, 무슨 성분때문에 인체에 해롭다는 뉴스 한 줄에 손님 발길은 완전히 끊어졌다.

세 아이를 모두 키운 지금 사업을 정리할 만도 하지만, 오히려 ‘옛 방식으로 만든 가마솥을 구입할 수 있는 전국 몇 안되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는 이들이 있어 가게 문을 열고 있다.

가마솥을 운반하느라 맺은 자전거와 인연도 각별했다. 그는 86년 한강개발 1주 기념으로 열린 단축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의 첫 챔피언이다. 싸이클 40km, 수영 1.5km, 마라톤 10km를 최고 성적으로 해냈다. 소유하고 있는 각종 자전거가 10여대에 이를 만큼 그는 해보지 않은 싸이클종목이 없다. 수많은 대회의 메달이 집안 가득하다. 철인3종경기 종목에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오상미씨는 그의 막내 딸. 부녀가 함께 출전해 상위권을 휩쓴 대회도 많았다.

“스포츠의 도전정신, 그 정신이 지금까지 솥 가게를 이어오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야. 어떤 이들은 몸에 좋은 철분이 함유된 쇠솥에 음식을 해먹어서 내 체력이 좋은가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지. 그런데 실제 무쇠솥은 우리 몸에 좋아요. 다른 철제품에 손을 베면 염증이 생기지만, 무쇠솥은 전혀 그렇지 않아. 잡 물질이나 독이 없기 때문이지.” 그는 솥 밑부분의 소위 배꼽(주물 후 손으로 깎아낸 부분)을 보여주며 ‘이런 것이 진짜 좋은 솥’이라고 일러줬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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