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원래 인간은 제정신으로 살다가 갈 수 없이 생겨먹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제 한 일을 오늘에 와서 후회하고 아침에 먹은 마음을 저녁에 바꾸는 경우가 다반사다. 약속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농담은 이제 농담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정도는 고사하고 대통령이 제아무리 철석같이 다짐을 하는 약속이라 해도 모두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언제 어디랄 것도 없이 대개 인간사가 그렇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플라톤”의 “이데아론”부터 최근 “M.샌델”이 수집해 놓은 서양의 정의론의 역사들까지를 대강 섭렵해 보거나, 공자에서 한비자, 사마천이 소개하는 이야기들까지를 더듬고 헤매보아도 영원 절대불변하게 내 정신을 의탁해서 비로소 제정신 차리고 산다는 경지를 얻기는 난망하다.

그러니 차마 세상일들에 대해 무슨 상식과 기준을 가지고 가부를 논하고 잘 잘못을 가릴 것인가 싶어 오직 말과 글을 삼가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진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삭히고 맘속에 접어두고 외면해버릴 수 없는 일들이 눈 들어 보는 곳마다 산재하니 이는 전적으로 나의 조야한 인격의 탓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 또한 너무하지 않은가 싶다.

우선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미 죄가 확정되고 그에 대한 단죄 처분으로 대통령의 직을 빼앗긴 사람이다. 그런 그를 지금 다시 재판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결과적으로 만에 하나라도 그에 대한 재판의 결과가, 적용할 법령상의 죄목이 없다거나, 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해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난다면 이 사회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죄형법정주의나 증거재판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등, 사법의 생명 같은 원칙들을 모두 배제하고 오직 정죄를 전제로 진행하는 것이란 말인가. 누구의 어느 행위라도 법원의 최종 판결에 의하지 않는 한 죄가 아니라는 이 나라의 헌법적인 원칙에 비추어 그것은 상식인가.

다시, 주민등록위장전입이라는 범죄는 경우에 따라 적용의 예를 따로 정할 수 있다는 발상은 가능한 것인가. 주민등록법 제37조 제3의2호는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 처 한다.“라고 하였다.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다. 이를 면하게 하려면 불기소 처분, 무죄 선고, 사면 등 별도의 법률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법을 없애야 하지만 그마저 소급 적용은 안 되는 일이다. 또한 현행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은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양해하는 것이 상식인가.

이제 곧바로 진행이 예고되어 있는 과거 정부들의 문제를 파헤치려는 시도는 과거의 정부도 저질렀던 폐습이니 그런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것이 적폐의 청산인지, 되짚어서 일사부재리 논쟁까지 끌어내고 자신들의 과거까지 다시 도마에 올리게 될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 상식일 것인지 깊은 속사정을 알 길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가슴 답답한 일이다.

모름지기 새 기분에 아픈 과거를 딛고 새로 힘차게 출발하는 나라의 모습이라면, 그때 가장 먼저 내세워야 하는 질문은 “무엇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상식이 아니겠는가 싶다. 어째서 하나 같이 고개를 뒤로만 돌려야 하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가 어렵다면 “눈물에 젖은 빵을 씹어보고, 남에게 월급을 주는 고통을 이해하는” 그런 일꾼들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하고 나라의 안보와 외국과 소통이 시급하다면 전장(戰場)의 논리와 각국의 역사와 사정을 꿰고 있는 “제갈량”과 “소진”과 “장의”, “이순신”과 “서희”를 찾아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상식이 아닌가.

국민의 대통합과 소통하는 정부를 꿈꾸고 설계해야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공무원들을 향해, 촛불의 뜻을 받들라고 호통을 친다면, 태극기를 들었던 국민들은 국민으로 받들지 말라는 얘기가 되지 않겠는가.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 공무원들에게 하는 이야기라면, 눈치 보지 말고 오직 국익만을 생각하며 멸사봉공해달라고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상식이 아닌가.

인조반정에 성공한 당시 서인세력은 집권에 성공한 뒤 남인의 거두 이원익을 영의정에 앉히는 소위 “정치”를 할 줄 알았다.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상식으로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적폐청산의 목표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것이 상식이 아닌가.

거칠게 제안하거니와 “일반사면”을 검토할 때다. 모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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