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이 초가라더니 온통 들리는 것이 위기론이고 걱정과 한숨소리다. 하고 한날 경제가 제일이라고 경제 타령만 해왔건만 수출은 본격적으로 뒷걸음을 치고 대기업들의 신규고용 계획은 멈춰 섰다. 4월 위기설을 경제정책의 최고위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지경인가 하면, 비단 조선, 해운만이 아니고 밉던 곱던 이 나라의 경제를 끌어왔던 대기업들 중에 앓는 소리 하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러고서야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언제까지 나의 급여를 책임지고 지급해 줄 수 있을지, 내가 오늘 문을 열고 있는 자영업이 과연 언제까지 내 밥그릇 노릇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예측이 난망이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는 이렇게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닌 문제가 우리 주위에서 간단없이 농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자국이기주의를 앞세워 근대역사상 최강의 힘으로 맞부딪치는 정치지도자들이 포진하면서 한반도에 만들어지는 국제역학적인 힘의 대립과 긴장은 그 도가 임계점을 넘어서기 직전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동·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상의 국경분쟁은 어차피 자원과 주변 패권의 확보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어 쉽게 외교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고, 아세안(ASEAN)의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중국, 일본의 통화와 지배력 경쟁은 피차 미래의 생사가 걸린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격화하는 데에 인도의 성장도 일정부분 기름을 붓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본격적인 동진(東進)전략 또한 일본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나토(NATO)의 긴장과도 영향을 주고받게 될 것은 필연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이 일본을 포기할 방법도 없을 것이려니와 지구가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생산과 소비시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미·일과 중국의 한 판 대결은 어차피 택일만을 남겨 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는 비단 이러한 외적인 힘의 충돌에만 있지 않다. 미·중·일·러가 속으로 누적시키고 있는 내부 모순의 체증(滯症)은 이의 외부 해소의 필요를 날로 압박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미국에 이미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 전통적인 “앵글로 색슨 – 유대 연합”에 기초한 리더십의 붕괴는 사회의 양분화를 가속화하고 있고 급기야 트럼프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의 분열현상은 미국에 내부 모순의 축적을 가속하게 될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외부적 수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중국의 지역, 계층, 한민족 편중적인 경제성장 또한 내부 갈등과 모순을 심화하게 될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도력의 강화는 독재화하기 쉽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민주화의 요구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 또한 여기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거니와, 모름지기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세계 역사상의 모든 전쟁은 당사국들의 내부 모순의 압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때에 한반도의 북녘에서는 권력을 유지할 아무런 당위성을 가진 것이 없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의 영구화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는, 사용할 곳이라고는 대한민국 단 한군데밖에 있을 수 없는 핵폭탄을 만들고 있고 자신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모든 인사들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자신을 위험분자로 낙인찍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현재 상태에서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긴 생존의 길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한반도에서 불장난을 벌인다면 그에게 손해가 있을 것이 무엇일까. 주변 4강도 원하는 바가 아닐까. 대내·외의 모순을 정리하기 위해 대규모 소모전을 한바탕 벌이고 난 뒤에 다시 휴전이 올 것이고 그 뒤에 그는 제2의 김일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그의 대체 권력이 될 수 있는 김정남을 정리하면서 그런 수순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사드 정도가 문제인가. 탄핵, 개헌, 심지어 대통령선거가 문제일까. 이런 모든 가정들이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 힘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쓸데없이 사회적으로 불안 심리를 확산시키는 것은 분명히 위험하고 소위 지식인들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위험을 감추고 외면만할 수도 없는 것이고 보면, 아무리 피해 가고 싶더라도, 살기 위해 알아야 할 만큼은 알아야 하고 생각할 만큼은 생각해야 하는 것이 항상 고단한 삶의 과제다. 그리고 우리의 바른 사색을 현실 속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냐 여부에 항상 우리의 내일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운명에만 기댈 것인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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