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인간이 혼자만 산다면 자연과 생존을 걸고 벌이는 투쟁이 있을지언정 거기엔 사회적 갈등 같은 것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복수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 그 사이에는 온갖, 소위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 등장하게 된다. 아마 둘 정도를 넘어서, 3인 이상 다수의 경우를 가정한다면, 그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경우 모략, 연합, 투쟁, 타협, 조정 따위 용어들이 필요하게 되고 급기야 제도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대니얼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에서 이런 모습을 잘 그려 보여준다.

그렇게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우리는 정치라고 부르고 인간들은 그러한 숙명을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어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 정치라는 것이 그 발생의 조건부터가, 대체로 대립과 조정이 필요한 불완전한 인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노상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정치인 본인들이 자신들이나 자신들의 직업을 묘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동서양의 역대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의 정치에 대한 수사를 모아보면, 긍정적인 경우보다는 부정적인 표현들이 단연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군주정치는 참주정치로, 귀족정치는 과두정치로, 민주정치는 무정부 상태로 타락한다.” -폴리비오스, “오늘날 정치는 이미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할 것이 아니다. 불학무식한 건달들에게나 맞는 직업이 정치다” -아리스토파네스, “정치와 인간의 운명은 이상도, 어떤 위대함도 없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자기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까뮈, “잘못 통치된 국가를 위한 첫째의 특효약은 통화의 팽창이고 둘째는 전쟁이다. 이 두 가지는 정치적, 경제적 기회주의자들의 피신처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들의 놀음 속에서 이유도 모르는 개죽음을 하게 된다.” -헤밍웨이, “비가 온 것을 자기 당의 공로인 것처럼 말한다면, 가뭄을 반대당의 탓으로 돌린들 하등 놀랄 것이 있겠습니까.” -모로.

마치 오늘 우리의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언어들인가 싶다. 이뿐만 아니라, 동양의 제자백가들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소위 “바른 정치”를 찾아 방황하였던가. 그러고 보면 동·서양과 고금에 바른 정치라는 것은 좀처럼 그 답을 찾아내기 어려운 인간의 영원한 과제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정치라는 인간 공존의 수단이 허접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들에게는 그것을 버리거나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난해한 이야기를 마치 숙명처럼 또 다시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제도는 대한민국의 통치 구조를 중앙과 지방자치로 양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도 당연히 중앙정치와 지방자치정치로 나뉘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않아서, 지방자치단체의 선출직 공무원들은 모두 중앙정치를 좌우하는 전국 규모의 정당들에게 공천과 행동강령에서 철저하게 예속된다.

이러한 결과로 지방자치와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고, 대한민국의 정치구조는 계층적(hierarchy)으로 고정화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을 꿈꾸기 일쑤고 철저하게 지역색으로 무장한 중앙정당의 논리에 복속한다. 각급 의회 또한 이러한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의회와 행정부는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의 경쟁보다는 정당의 논리에 따라 편짜기에 골몰한다. 심지어는 같은 정당 안에서 조차 국회의원이라는 중앙정치인의 이해와 그 입김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있다.

지난 번 이 지면에서도 밝혔거니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법에 기초하여 성립한다. 따라서 지방정치도 바로 이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움직여야 한다. 다시 말해 지방자치의 정치인 모두는 개인적인 입신양명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지방자치법 제8조와 제9조가 정한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전문가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발명한 제도 중에 정치와 유사한 행위로 행정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한 집단이 정치라는 과정을 통하여 선택한 집단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검증하고 발전시키는 행위가 대체로 행정의 기능이라고 이해한다. 결국 사회라는 조직은 정치와 행정이라는 두 개의 틀 속에서 돌아가는 것이고 당연히 행정도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이 서로 다른 특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야기 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들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것일까. 앞의 인용문들에서처럼 정치가 무식하면서 오히려 과잉하면 행정이 죽고 행정이 죽으면 사회가 죽는 것이 순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개헌 할 거라면서 왜 이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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