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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얽힌 전설
   
 

중국의 모든 다리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운 전설을 품고 있다. 대다수의 옛 다리들은 그 이름만 남아 있지만 다리들이 품고 있는 문화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자오저우챠오

자오저우챠오는 안지챠오라고도 하며, 허베이성 자오현 샤오허에 위치하고 있다. 수양제 때 이준에 의해 축조됐으며, 약 1천400여년 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으로 잘 보존돼 있는 가장 오래된 아치형 석교다.

자오저우챠오의 전설에 관한 각기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송대에 이 다리 위에 ‘신선의 발자국’이 남았다는 전설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북송 주휘의 ‘북원록’에는 ‘원호간사명안제, 유장과로려적’이라고 기록돼 있다. 원대에 이르러 ‘호해신문이견속지’에는 이에 대해 최초로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 “춘추전국 시기 노반이 만든 이 다리에는 ‘팔선’ 중 하나인 장과로와 시왕 및 송태조 조광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가장 투철하고 간결하게 요약한 것으로는 동요 ‘소방우’인 것 같다. “조주석교는 노반이 수리하고 옥석의 난간은 성인이 남긴 것이다. 장과로가 노새를 타고 다리를 건너니 시왕이 수레를 밀어 도랑을 다진다.”

▲루거우챠오

베이징에 루거우챠오의 사자가 셀 수 없이 많다는 헐후어가 전해지고 있다. 1189년에 건립된 루거우챠오는 아치형 다리로 전장 266m, 양족에 281개의 지주가 설치돼 있고, 각각의 지주에는 돌로 된 사자가 조각돼 있다.

옛날에 루거우챠오의 사자가 셀 수 없이 너무나 많다. 어느 현령(군수)이 이런 전설을 듣고 나서 믿어주지 않고 정확한 숫자를 얻기 위해 사병 100명을 보냈다. 결국 사병들이 센 숫자가 서로 다랐고, 현령이 직접 가서 세기로 결심했다. 그는 여러번 세어 봤지만 같은 결과를 받은 적 없었다. 현령은 ‘설마 사자들이 움직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 중 현령이 다시 와서 사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고라고 현령이 생각했다. 라고 생각한 현령 머리 속에 떠오른다. 한밤중, 현령이 다시 와서 사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재미있게 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소리에 놀란 사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루거우챠오의 사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됐다.

▲광지챠오

광지챠오는 광둥성 차오저우시 고성동문 밖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명한 교량전문가 마오이성에 의해 ‘세계적으로 최초의 계폐식 교량’으로 불린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한유가 차오저우로 부임했는데 세찬 강물로 인해 백성들이 강을 건너지 못한 걸 보면서 마음이 몹시 초조했다. 그는 이미 선인이 된 질손 한상자와 신통력이 강한 광지스님에게 교량을 건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협의 끝에 팔선이 동쪽 공사, 광지스님이 서쪽 공사를 책임지기로 정했다. 광지스님이 상푸산밑에 다가와 사 속의 돌을 양으로 변화시키고 양들을 이끌어제자리로 돌아가가 있었다. 어느 욕심쟁이는 양 두 마리를 훔쳐갔다. 그는 도망치다가 양 두 마리가 산 언덕 두 개로 변해 그를 눌러 죽였다. 이는 바로 오늘날의 우양산이다. 동쪽에서 팔선이 봉황산 밑에 다가와 돌을 돼지로 변화시키고 각자 돼지 몇 마리를 이끌며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철괴의 다리가 불편해서 천천히 걷다가 맞은 편에서 걸어온 슬픈 표정의 여자를 바라보며 ‘망했다’라고 크게 외쳤다. 이 여자의 슬픔이 영기를 씻어내려 결국 돌이 만히 줄어들게 됐다. 건축재료의 부족으로 인해 다리가 강 가운데 까지만 완성됐다. 이철괴가 매우 후회하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교각이 비뚤어지게 됐다. 하선고가 연꽃을 내던지고 배로 벼노하시켜 양쪽의 다리를 연결하게 했다. 이 다리가 완공된 후 차오저우 백성들은 팔선과 광지스님을 기리기 위해 ‘샹쯔챠오’, ‘광지챠오’란 두 이름을 지었다.

안핑챠오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는 중국에서 가장 긴 석교다. 일찍이 안해(오늘날 푸지엔성 진쟝시 안하이진 일대)는 자주 홍수와 해조의 이중 습격을 ㄹ받아 백성들의 삶이 고달프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처에 불상을 모셔놓고 빌었지만 이런 어려움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이는 동해와 남해의 두 마리 요괴 용이 ㄹ방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하는 바로는 득도해 신선이 된 도인이 영원산 정상에서 두 마리 요괴 용을 보니 또 말썽을 일으키고 있자 공력을 운행해 안해진에서 해만을 건너 남안의 수두진까지 이르는 무지개색 쇠사슬을 토해냈으며 잉 요괴 용이 놀라 혼비백산하며 즉시 바다로 뛰어들었고, 큰 물줄기도 따라서 물러갔다고 한다. 백성들이 이후 요괴 용이 다시 돌아올까봐 걱정을 하자, 어떤 이가 기다란 큰 돌을 하나하나 바닥에 평평하게 붙여 영원히 변치 않는 쇄교옥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는 첫째, 마을에서 용이 말썽 피우는 것을 막고 둘째, 두 현의 백성들이 왕래하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의견은 즉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곧바로 5리에 달하는 바다 위 석교가 지어졌다. 이 때부터 요괴 용은 다시는 말썽 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후 각지의 행상선이 서로 오가며 상이들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그리하여 상업이 날로 발달하고 작황도 해마다 풍년이었으며 백성들도 편안하게 살게 됐다. 그래서 이 다리는 ‘안핑챠오’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리의 길이가 5리나 돼 일명 ‘5리챠오’로도 불린다.

<자료제공 : 중국 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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