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4.18 목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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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여개의 감사패, 80평생 최고의 보물조영환 영광한의원 원장

“80만원이 생기면 20만원을 어떻게든 만들어 100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내곤 했다. 내 평생 최고의 재산은 이같은 도움을 받은 분들이 주신 520여개의 감사패가 전부다.”

여든 나이에도 늦은 밤까지 한의원 불을 밝히고, ‘의술은 곧 인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영광한의원 조영환 원장의 말이다.

520여개의 감사패가 말해 주듯 소외된 이웃, 어려운 환경에서 학업에 매진하는 고학생, 사회의 등불이 되고자 했던 많은 사회단체 등 조 원장의 도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미국에서 한국 한의사의 권익을 위해 대변했고, 미국에서의 성공을 뒤로 귀국해 인천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겠다는 신념으로 80평생을 살아온 조 원장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음의 고향, 인천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조 원장은 열일곱 나이에 중학교를 마치고 인천으로 왔다. 버스를 타고 인천을 오는 것보다 배가 빨랐던 50여년 전 아무런 연고도 없던 인천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동구 송림동의 유명 한의원에서 살면서 한의사의 꿈을 키웠던 조 원장은 경희대 한의과를 졸업한 뒤 다시 인천에서 한의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동구에 천광한의원을 차리고, 전문 분야였던 침술로 명성을 얻었던 그는 돌연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떠났다. 원광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조 원장은 LA 현지 한의과 대학에서 교수, 병원장을 맡아 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대학은 조 원장 덕에 인근 지역에 새로운 교정을 세울 정도로 부흥기를 맞았다. 

조 원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고액의 연봉을 뒤로 하고 조 원장은 현지에서 한의원을 열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의원을 통해 번 돈으로 한의과 대학을 세우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의원은 줄을 서 진료를 받을 정도로 성행했고, 결국 조 원장은 버젓이 한의과 대학을 설립했다. 조 원장은 “한양방 종합병원을 미국 최초로 시도해 성공을 거뒀다”며 “이후 미국 내에서 한양방 종합병원이 줄줄이 세워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성공가도에 있던 조 원장은 인천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2년 미국 영주권 대신 한국 국적을 다시 얻은 것이다.

그는 “비행기 타는게 너무 싫어서 인천에 왔다”며 “내 젊음 시절 꿈을 키웠던 인천에서 마지막 여정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 한의사의 권익을 대변하다

조 원장은 미국에서의 성공보다 한국의 후배 한의사들의 권익 신장이 더 소중했다.

미국 내 한의사와 한국 한의사의 교류를 추진했다. 한국 한의사들의 미국 진출을 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한의사의 한국 내 진입을 꺼려한 일부 한의사들로 인해 조 원장의 숙원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거기서 머무를 수는 없었다. 한국 한의사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미국 내 한의과 대학을 만들어 한국인의 긍지를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자신의 성공이 아닌 한국에 있는 후배 한의사들의 격을 높였다. 이는 젊은 시절 어렵게 공부했던 기억에서 비롯됐다.

조 원장은 “한의사도 양의사만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당시를 생각하면 후회도 많지만 지금은 한국의 제2의 고향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베푸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푸는 것은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인천에 있는 모든 대학에 선뜻 1천만원의 장학금을 내는 조 원장. 어려운 이웃에 무료로 침을 놓아주며 인술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는 한의사. 주위에서는 그를 돈이 많아 베푸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베푼다는 것은 어려운 이들에게 작지만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의미일 것이다.

“어릴 적 없는 살림에 한 끼를 해결할 쌀만 있었다. 근데 구걸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 어머니께서 그 쌀을 내어 주셔서 그날 배를 곯았던 적이 있다.”

조 원장은 기부 등 사회 환원의 이유를 유전이라고 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보다 더 어려운 이에게 조금의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광한의원 2층에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감사패는 조 원장이 살아 온 역사이자 그 산물임에 틀림없다.

조 원장은 충남 당진 출신의 ‘이방인’이 아니라 인천지역 사회의 등불을 밝히고, 인천발전에 힘을 보태는 진정한 ‘인천인’으로 살고 있다.

 

정민교 기자  jmk2580@incheonnews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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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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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재원 2018-06-05 00:46:08

    인천 지역사회의 힘들고 어려운곳에 자비를 베푸시는 조원장님은 인천의 등대불과 같은 분이십니다
    건강하셔서 150세 천수를 다 하실때까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힘써 주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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