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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최초의 서양병원, 성누가병원

1890년 9월 29일, 영국해군 군종사제였던 코프(Corfe,C.J.) 주교가 랜디스 (Landis, E.B.) 등 선교사 6명과 함께 제물포에 도착하여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 해 10월 성공회 의료 선교사 랜디스는 성당 밑에 집을 구해 임시 진료소로 사용하며 의료구호 활동을 펼쳤다.

1891년 10월 16일, 랜디스는 지금의 내동 성공회교회 자리에 인천 최초의 서양병원인 성 누가 병원(St. Luke's Hospital)을 설립하였다. 그날이 성누가를 기념하는 침례일이었기에 병원 이름을 성 누가 병원이라 하였는데 랜디스는 “성 누가 병원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며 ‘선행을(베푸는 것을) 기뻐하는 병원(The Hospital of Joy in Good Deeds)’이란 의미의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이라고 직접 작명했다.

하지만 당시 제물포 주민들은 이 병원을 성 누가 병원이나 낙선시의원이 아닌 ‘약대인(藥大人)병원’이라고 불렀다.

약대인은 ‘약을 주는 큰 사람’이라는 뜻으로 랜디스의 의료 활동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표현이었다.

병원 일대의 야산 또한 그의 이름을 따서 ‘약대인산’, 혹은 ‘약대이산’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는 거듭되는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발병하여 1898년 4월 1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인천 북성동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외국인묘지는 1965년 청학동으로 이전).

성 누가 병원은 랜디스 사망 후 잠시 폐쇄되었다가 임시 러시아영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04년 영국인 웨이어 박사가 의료 활동을 하면서 잠깐 명맥을 이었으나 1916년 그가 인천을 떠나면서 문을 닫았다.

1956년 6월 23일 성 누가 병원 부지에 새 성당을 건립하고 성 미가엘 성당(내동교회)으로 명명하였다. 1990년 대한성공회에서는 내동 성공회교회 내에 그의 공적비를 세웠다.

 

정민교 기자  jmk2580@incheonnews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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