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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제사를 지냈던 원도사(猿島祠)

서해안 섬들의 정신적인 공간, 원도

제사의 범위나 영향력이 마을에 한정되지 않고 국가와 지방관,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제사가 인천지역에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낙섬의 원도사(猿島祠)에서 지냈던 제사다. 낙섬은 조선시대에 원도 (猿島)라 불리며 서해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섬의 위치가 서쪽 방위에 해당하는 신(申)의 방향이라 원숭이를 뜻하는 원도(猿島)로 불려진 낙섬은 일부 학자들의 해석처럼 육지에서 떨어져 있어서라기보다는 ‘납(納)섬’, 곧 ‘제사를 드리는 섬’에서 유래했다가 발음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 1437년(세종19) 3월 및 1527년(중종22) 5월에 국가제사와 관련되어 원도의 경우, 여러 개의 위판군을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음이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원도의 제사는 그 자체가 제사의 대상이 아니라 인천 부근의 여러 섬들의 제례를 합사(合祀) 시킨 것을 알 수 있다.

원도의 존재는 지도에도 나타나는데,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표시돼 있고,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만든 지도나 1937년 일본에서 제작한 관광객용 지도 「경승(景勝)의 인천」에도 그 이름이 보인다.

서해안지역 국가제사를 담당했던 원도가 갖는 정신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병자호란때 호국의 장소가 되면서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1636년(인조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윤생은 의병을 모집하여 원도에 들어가 최후까지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더불어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그 소식을 접한 부인 강씨는 곧 바다에 몸을 던져 부군과 함께 의절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861년(철종12) 이윤생은 좌승지에 부인 강씨는 숙부인에 각각 추증되었다. 그 정려각은 현재 남구 용현동에 남아있다.

원도사의 제사는 이후 급변하는 대내외 정세와 갈등으로 조선 전기부터 이어진 국가제사의 전통과 명맥을 유지하기 힘든 정치적 상황 속에서 19세기 초에 폐지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민교 기자  jmk2580@incheonnews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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