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서 관광산업 불모지로 전락
복합리조트가 만병통치?…인천도시관광 쇠락 곱씹어야

③월미·송도유원지와 관광

지난 6월 국내외 업체 14군데가 1조원을 투자해 인천에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의향을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비쳤다. 모히건 선과 GGAM랑룬, 신화련 그룹, 초우타이푹 엔터프라이즈 그룹, 불룸베리 등 세계적인 카지노 운영업체들도 영종·용유·무의·송도국제도시·인천공항 국제업무지구 등지의 인천이 굵직한 관광산업을 벌이기에 매력적인 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천의 관광산업은 비단 오늘날의 얘기만은 아니다. 외국의 자본이었지만 인천은 광복을 맞기 훨씬 이전부터 국내·외인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관광지를 뒀고,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지금 관광특구로 포함된 월미도나 송도유원지 등지가 바로 그곳이다.

 
1914년 9월 인천부(仁川俯)에 편입된 월미도는 1918년 풍치지구 지정과 함께 1923년부터 관광단지(유원지)로 본격 개발됐다. 월미도는 해수욕장과 동물원과 식물원 등이 자리를 잡았다. 최고의 시설이었던 해수탕인 조탕(潮湯)’과 3층짜리 목조건물인 빈(濱)호텔, 길이 50m의 해변 풀장, 일본식 요정인 용궁각’(龍宮閣) 등은 행세 꽤나 한다는 국내외인들의 단골코스였다.

관광객들이 몰리자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1920년 4월 경인선에 인천행 특별 임시열차를 운행하기도 했다. 월미도의 벗꽃을 구경하려는 상춘객들을 위한 임시열차에 ‘꽃열차(花列車)’라는 이름도 붙였다.

 
월미관광단지는 하나의 산업군을 빚어냈다. 인천우체국은 넘치는 인파를 겨냥해 당시로서는 최첨단 통신시설인 자동식 공중전화를 월미도에 설치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인천 자동차영업의 첫출발을 끊은 별부자동차부(別府自動車部)도 월미도행 버스를 증차했다.

1940년쯤 일본이 석탄과 기름 저장탱크 등 월미도를 군사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인천의 관공산업 축은 1937년 개통된 수인선을 따라 송도유원지로 옮겨졌다. 송도유원지는 수위조절이 가능한 수문개폐식 인공 해수욕장과 무대, 운동시설, 간이호텔 등을 갖춘 사계절 관광단지였다.

2차세계대전으로 일제의 송도종합휴양지 개발계획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송도유원지는 1961년 11월 국가지정 관광지로 승인받으면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의 명성을 이어갔다.

송도유원지의 절정기는 1978년 10월 인천서 열린 제59회 전국체전 앞뒤였다. 인천도시관광㈜가 1972년 유원지 일대 4만3천554㎡을 매립해 인공해변에 모래를 깔고 오락시설과 방갈로, 탈의·샤워장, 보트장 등 현대식 시설을 마련했던 터였다.

 
인천시 인구가 104만 명이었던 1979년 86만3천 명에 달했다. 송도 유원지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따로 없었다. 여름철이 아닌 비수기 입장객은 그해 43만2천980명에 달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이 북적였던 송도유원지는 자본의 시샘을 탔다. ‘뻐꾸기 시계’로 한창 잘 나가던 ㈜한독은 1982년 4월 송도유원지 주변인 옥련·동춘동 갯벌 137만638㎡에 대해 매립카드를 들이댔다. 서울 아시안게임(1986년)과 올림픽(1988년)을 앞두고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한 대규모 관광위락시설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돌고래쇼장과 아쿠아리움, 인공파도를 만들어내는 해수풀장, 자연학습장, 체력단련장, 빌라촌 등을 세우기로 했던 한독의 송도유원지 조성사업은 ‘그림’뿐이었다.

매립에 쓸 흙을 제때 구하지 못하면서 한독은 88올림픽이 끝난 뒤인 1989년 6월에 매립지를 준공했다. 매립공사에 246억원을 투입한 한독은 부도를 냈고, 그 매립지는 1996년 4월 대우자동차판매㈜로 넘어갔다.

매립지를 사들인 대우는 그곳에 본사 이전을 전제로 대우타운을 조성하겠다며 호들갑을 떨며 용도변경을 추진했다. 결국 대우자판은 매립지 중 49만9천575㎡는 테마파크 조성을 전제로 나머지 53만8천952㎡를 자연녹지에서 상업·주거용지로 용도변경했다.

이 계획 역시 대우자판의 파산으로 빛을 보지 못한 채 그 땅은 나대지로 남아있는 상태다. 국민관광지였던 송도유원지(90만7천380㎡)는 해수욕장 등이 매립돼 중고차수출단지 터로 활용되고 있다. 유원지 터에 세웠던 관광단지조성 계획은 토지주들의 반발로 삽조차 들이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해운대를 둔 부산의 시민들이 송도유원지를 찾았을 정도로 국민관광지를 품고 있었던 인천은 지금, 관광지라고 해봐야 딱히 내세울 것 없는 관광산업의 불모지 신세로 떨어졌다.

그래서일까? 카지노를 축으로 하는 복합리조트가 인천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천지가 개벽할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영종도 미단시티와 송도국제도시 9공 등 땅을 갑고 있는 인천도시공사나 인천항만공사 등은 관광산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저 국내외 자본에 좋은 값을 받고 땅을 넘기면 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송도유원지를 관리했던 인천도시관광㈜가 문을 닫게 된 연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인천도시관광은 1962년 인천시가 출자한 땅 84만6천㎡를 받았다. 이 회사는 관광객의 입맛에 맞는 시설과 서비스의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땅을 팔아 인건비와 주주 배당금으로 썼다. 적자운영은 계속됐고, 63만4천㎡는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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