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의 차이점
우리나라에서 5월은 대학의 축제가 벌어지는 달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캠퍼스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간이천막이 설치되어 난민촌을 방불케 한다. 매년 축제 때마다 임시 천막촌이 생겨나는 이유는 학생들이 전공별로 자기들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간이주점을 차리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학생들이 이렇게 천막 치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우리 민족에게 북방의 유목민 피가 흐르긴 흐르는가 보다. 저 드넓은 만주를 주름잡던 고구려인의 경쾌하고 흥겨운 축제처럼 우리 대학생들의 축제 역시 다양한 춤과 노래 그리고 흥미로운 놀이기구와 각종 장기자랑으로 젊음을 발산한다.

그런데 이런 젊음의 향연인 대학축제가 문화의 대국이라는 프랑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축제는 고사하고 프랑스 대학엔 입학식과 졸업식도 없다. 대학에 합격한 신입생들은 각자가 전공사무실에 가서 수강신청과 학점이수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고 곧바로 강의실로 들어간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시작되는 그들의 대학생활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과대표도 없고, M.T.도 없으며, 몇 개 안되는 동아리 활동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프랑스 대학생들은 대학입학과 더불어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독립이라는 말은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산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의미까지를 포함한다.

프랑스 대학생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와 국립대학으로서 저렴한 학비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프랑스에도 미국의 경우처럼 학비가 비싼 몇몇 사립학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국립대학이며, 1년 등록금은 우리 돈으로 10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여기에 도서관 이용료와 보험료 등을 추가한다 해도 학생이 부담해야 하는 돈은 1년에 50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 기숙사 비용 역시 저렴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할 수 있다.

스스로 돈을 벌면서 생활을 하다보니 프랑스 대학생들의 옷차림은 우리 대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소하다. 하긴 일반 성인들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구입하는 프랑스제 명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직 정식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학생들의 옷차림이 검소하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리라.

#엄격한 학사제도와 자유로운 편입학
프랑스 대학의 학비가 싸다고 해서 수업과정이 엉성하다거나 대충 공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대학은 우리의 경우와 달리 입학은 상대적으로 쉬워도 졸업이 힘들다. 교수들은 학생의 학점에 대해서 인정사정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특히 우리의 문화와 구분되는 부분인 것 같다.

‘교수님, 집안의 어려운 일로 인하여 이번 시험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에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등록금이 부족하여 휴학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빨리 사회에 나가 어려운 집안을 도울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내용의 청탁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일 프랑스에서 이런 청탁을 하는 학생이 있다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더 노력해서 훌륭한 성적을 얻도록 하시오.’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느껴지는 교수들의 이러한 원칙덕분에 프랑스에선 대충 공부해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인들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보다는 졸업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한다.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전공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했다는 보증서가 되므로, 프랑스 기업체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따로 입사시험을 치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학에서의 성적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경우처럼 TOEIC 성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프랑스에서도 영어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토익과 토플을 위한 사교육기관이 성행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교육이 발생한다면, 대학이 그 요구를 충족시켜줄 방법을 고안해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 사회는 자기들의 대학교육을 믿고 있으며, 대학은 이러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프랑스에서는 대학간의 편입학 이동이 꽤 자유로운 편이다. 예를 들어 노르망디의 르아브르대학교 재학생이 파리의 소르본대학교로 편입하기 위해서 특별히 치러야 하는 편입시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절차는 서류심사로 진행이 되며,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편입여석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학생의 요청은 수용된다.

편입이 이렇게 수월한 이유는 프랑스의 대학이 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평준화되었다는 말은 프랑스의 대학이 우리나라나 미국의 경우처럼 일률적으로 서열화 된 대학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에 명문대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도 엄연히 명문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명문은 전공별로 분리되어 존재한다. 즉 프랑스의 대학은 특성화로 인하여 명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특성화된 명문대학
1215년에 설립된 프랑스의 파리대학은 1158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로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설립자 로베르 드 소르봉(Robert de Sorbon) 신부의 이름을 따서 소르본대학교라고도 불렸던 파리대학은 오늘날 총 13개의 독립된 대학으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이런 분리과정에서 각각의 대학은 특성화를 통하여 모두 명문으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 1대학인 팡테옹 소르본(Pantheon Sorbonne)이 법학과 경제학 분야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문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면, 파리대학 중 가장 역사가 짧은 파리 8대학교는 언어학 분야에서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방의 각 대학들도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춰 특성화되어 있다. 프랑스 최서단에 위치한 브레스트시의 브르타뉴 옥시당탈대학교가 해양학과 노인학 평생교육분야에서 유럽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듯이, 르아브르대학교 역시 물류학에서 유럽 최고의 명문으로 인정받는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하대는 인천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물류학 특성화를 위하여 르아브르대학교와 긴밀한 학술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으며, 노령화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고 브르타뉴 옥시당탈 대학교와 평생교육 교류협정을 맺고 있다.
인하대의 이러한 노력이 인천의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의 진정한 초석이 되어, 이를 계기로 우리의 대학교육도 사회적 신뢰를 보다 확실히 구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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