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2일, 중국 연변의 길림신문사에서 제1회 ‘인천컵 인성교육상’ 시상식이라는 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졌다.

1월부터 10개월간 교육을 주제로 한 우리 말 글과 그림을 공모해 시상한 것이었다. 중국 내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 민족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였다.

이 행사의 첫머리에 ‘인천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천문화재단이 국제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이 행사를 후원했기 때문이다. 조선족 문화는 중국과 인천을 잇는 문화적 가교인 만큼 이번 행사의 의의는 크다.

‘인천신문’이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한 ‘내 마음의 문화마일리지 1%’ 캠페인은 이번이 마지막 회다. 이번 캠페인에는 <길림신문>의 협조를 얻어 제1회 인천컵 인성교육상 수상작들로 꾸민다.

지면이 한정돼 부문별 수상작 전체를 싣지 못하고 금상과 은상 일부만 싣는다.



엄마의 새옷

장춘시 쌍양구 조선족중학교 2학년 리미영

속담에도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옷이 좋다고 하였다. 어느 누군들 새옷을 좋아하지 않으랴. 항상 소박하고 무던하시던 엄마도 요즘엔 ‘새옷’치레에 바쁘신 것 같다.

워낙 우리 집은 3대가 한집에 살고 있는데 나와 동생은 집에서 몇 십리 떨어져있는 시가지 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고있다. 엄마와 아빠는 기타 경제 근원이 없이 얼마 안 되는 논농사로 생활도 해야 하고 우리 두 형제의 공부 뒷바라지도 해야 하였다.

그래서 나와 동생의 공부비용과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엄마는 어쩌면 내가 볼 때마다 ‘새옷’ 차림일가?

지난 월말에도 방학하여 집에 갔더니 엄마는 또 ‘새옷’을 입고 계셨다. 나는 지난해 겨울에 산 초록색 바지를 벗어 엄마 앞으로 훌쩍 던지며 “엄마, 이 바지 이젠 입기 싫어요, 나도 새 걸로 하나 사줘요!” 하고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엄마는 바지를 쥐고 이리저리 보시더니 “아무데도 판난 데가 없는 거 아니냐?” 하며 의아해하셨다.

“엄마, 이런 바지는 지금 유행이 아니예요. 온 겨울 입었잖아요. 나도 새옷 입고파요!” 나는 푸르딩딩한 얼굴빛을 엄마한테 던졌다. 엄마만 자꾸 새옷을 갈아입는 것이 마음속으로 언짢기만 하였다.

이튿날 학교로 가져갈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엄마는 비닐봉지에 포장된 새 바지를 내 가방 안에 넣어주며“<지난번 네가 멋있다던 그 바지다. 가져가 조심히 입어라.” 하고 담담히 이야기하셨다. 나는 비록 자기만 새옷을 사 입는 엄마를 고깝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딸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엄마가 고맙기만 하였다.

나는 엄마한테 고마운 마음을 보여드리고자 벗어놓은 빨래를 주섬주섬 소래에 담았다. 거개가 엄마의 “새옷”들이었다. 나는 이 기회에 엄마가 어떤 새옷들을 사 입었나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럴 줄이야! 바지가랑이에 다른 천을 대놓은 건 웬 일일까? 아니, 겨드랑이는 왜 여러 겹으로 누벼 놓았을까? 머리에 의문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이때 방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소리가 가랑가랑 들려왔다.

“에미야, 애들만 애들이라 하지 말고 너도 옷을 좀 사입으렴. 어떻게 남이 주는 옷만 그렇게” 말끝을 흐리우시는 할머니시다.

“남이 주는 옷도 새것 같은데 괜찮아요. 애들이 공부만 잘하면 난 아무래도 만족이예요.” 역시 담담한 엄마의 대답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다른 사람이 준 엄마의 ‘새옷’, 나의 불만을 그렇게도 많이 자아냈던 엄마의 ‘새옷’이 아닌가!

엄만 워낙 자존심이 아주 강하셨다. 하지만 이 가정을 위하여 자식을 위하여서는 남이 주는 옷도 입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새옷’을 입을 때의 엄마의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게 절약해낸 돈으로 우리 두 형제의 공부치레, 옷치레를 해줄 것만 생각했을 엄마리라. 다른 엄마들이 새옷차림으로 나들이를 나갈 때 엄마는 우리 두 형제의 성적표를 보면서 웃었으리라.

나의 두 어깨는 저도 모르게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음이 뭔가에 녹는듯하더니 쿡하고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이때 눈앞에는 멋진 양식에 값비싼 한국 옷을 차려입은 순이 엄마가 나타났다.

또 명품 옷에 부츠를 받쳐 신은 철이 엄마, 시체옷차림을 한 영이 엄마도. 마지막에 흐릿해진 눈앞에 ‘새옷’ 차림을 한 엄마가 나타났다.

눈물방울에 오색영롱해진 엄마의 형상이 왜 이렇게도 예쁠까! 순이 엄마, 철이 엄마, 영이 엄마보다도 몇 갑절 예쁜 엄마는 아가씨 선발에서 계관을 얻은 미인보다도 더 아름다울 줄이야! 엄마의 미소는 그렇듯 찬란하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를 오해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사자리했던 자신이 더없이 미웠으며 이런 엄마로 하여 행복감 또한 그지없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은 물 소래에 허다한 파문을 일궈놓았다.

파도처럼 설레는 나의 마음에도. 나는 힘주어 ‘새옷’을 씻었다. 내 마음도 깨끗이 씻어보려고.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굳이 굳이 다짐했다. 엄마한테 더 큰 행복으로 될 성적표를 가져오리라고! (지도교원 장춘령)



내일의 태양은 마음으로 가꾸는 것이다

류정남

뉘라할 것 없이 금덩이처럼 귀한 자식을 내일의 밝은 태양으로 떠오르게 하자면 지극한 정성과 마음으로 심어 가꾸어야 함을 심심히 느낀다.

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 푼푼치 못하다. 한국에 나가 돈벌이할 기회가 생겼지만 우리는 자식이 대학에 붙을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자고 약속했다.

부모가 곁에 있어준다는 그 자체가 한창 자라는 자식의 마음에는 거대한 자산이고 크나큰 힘이 되었던 것인지 비록 화장실도 없는 작은 세집에서 살아가는 형편이었지만 아들애한테는 항상 심신을 포근히 덥혀주는 마음의 항구로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아들애는 조선 글을 배운 그날부터 독서에 빠졌다. 올바른 독서 습관은 예상외의 많고 많은 것들을 깨치게 한 것 같다. 글속에 파묻혀 혼자 조용히 행복과 눈물을 감수할 줄을 알았고 그로부터 인간사회의 선악을 가리는 척도를 세운 것 같았다.

아들애가 소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우리는 방황한 적도 있었다. 그때 한족학교로 전학해가는 바람이 불어치는 통에 우리도 관계를 통해 괜찮은 한족학교와 연계를 달아놓은 후 정색하여 아들애와 담판을 했다.

그런데 아들애는 눈물까지 떨구면서 견결히 싫다고 잡아뗐다. 부모의 입장이었지만 우리들은 아들애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선택이 참으로 정확하였고 따라서 어린 자식에 대한 존중은 부모로서 항상 취해야 할 바라고 생각된다.

누군가 자식은 부모의 교육자라고 했다. 뒤에서 항상 자식이 지켜보는 것만 같아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라도 인간답게 해야 하고 그러노라면 부모가 먼저 훌륭해진다는 데서 나온 말이겠다.

하여 아들애에게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타인을 대하고 자기에게 차례진 인생을 소중히 여기게끔 일깨워주었다. 아들애는 지금껏 크면서 남들과 한번도 싸운 적 없었고 PC방과 같은 곳의 출입 때문에 부모를 애태운 적도 없었다.
(중략)

자식교육은 하루아침에 성사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욕망과 설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허영의 권리욕과 물욕보다도 오직 자식욕만을 이 세상의 최상으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항상 사랑으로 충만된 따뜻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부모 자신의 삶의 모습 그대로를 투명한 인성교육의 교과서로 내어놓는다면, 사실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전화벨소리가 남기는 여운

리미선

따르릉!

새해아침의 첫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남편은 학생들의 전화라고 하면서 곧장 나더러 받으라고 한다. 과연 나의 전화이다. 이렇게 수십 번 반복한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많은 제자들의 전화축복을 받으며 흥분에 잠겨있는 것이 이젠 나의 독특한 설날의 풍경으로 되였다.

이처럼 흥분과 즐거움 속에서도 나는 매 하나의 아이들에게는 불과 3년밖에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좀더 잘해주었을걸 하는 후회에 잠겨보기도 한다.

더구나 보내오는 전화의 주인공 대부분이 이른바 차등생이었고 또 그들이 늘 나의 꾸지람 속에서 학창시절을 끝마치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 같다. 광철이, 석광이, 자성이, 성군이…말짱 장난꾸러기들이었고 말썽꾸러기들이었다.

간혹 우수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나의 마음을 울려주는 문안의 목소리는 대부분 문제꺼리 학생들이다. 미운 정들이 세월 속에서 이렇게 고운 정으로 변하여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픔 속에서 나는 나의 교육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았는지 검토해보게 된다.

분명 많은 사랑을 우등생들에게 주었는데 내가 받는 존경은 오히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성난 꾸지람만 듣던 짓궂은 애들한테서 오니 말이다. 웬 영문일까?

일부 우등생은 학교에서 선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백전백승의 우월감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학교를 떠나면 전화 한통 없다. 너무 섭섭하고 가슴이 얼얼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무엇인가 잘못된 교육에 까닭이 있는 것 같다. 제 손으로 제 뺨을 때린 그런 찜찜한 느낌이 든다.

공부만 잘한다고 늘 칭찬만 주고 정감교육을 주지 않았던 과정이 학습 성적 높은 애들을 기형으로 발전하게 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비평과는 인연이 없다싶었고 칭찬만으로 살았다. 이런 것에 습관되었던 이유로 지식만 알고 인정을 모르고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게 된 것이 아닐까?

우수생들이 사회에 나서면 다시는 우수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원인 때문이 아닐까?

학교 교육의 평가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학기마다 이러저러한 조건으로 표창을 주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이리저리 어디에도 걸리지만 성적이 좀 내린 학생에게는 그런 기회와 행운이 좀처럼 깃들기 어렵다.

이런 세습적인 평가제도가 학생들 인생을 기울어진 모습으로 그리게 하는 것이다. 조용히 공부만 해 성적이 높으면 교정의 샛별로 된다. 헌데 그런 반짝이던 샛별이 사회에 나가면 빛을 잃게 되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그래서 올해 설날아침의 전화벨소리는 별스레 무겁게 들리기도 한다. 나에게 심각한 경종으로 울린다. 사랑과 가르침으로 융합되는 우리 교육의 길을 다시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후대들에게 서책의 지식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가르쳐 주어야 할 의무감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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