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대규모 사회적인 사건마다 상쾌하고 모범적인 해답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는 거의 모든 대형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오로지 폭력적인 시위와, 투표의 논리에 의탁한 선거, 그리고 재판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그러한 잠정적인 해결은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의 향배에 따라 또 다시 같은 방법에 의해 번복을 거듭하기 일쑤다.

그와 같은 비생산적인 재생과정을 통해, 이 사회에 등장했던 어떤 문제들도 영원한 미제사건들이 된다. 문제를 사회적 이성과 합의로 풀려하지 않고 권력과 패거리, 돈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탓에, 이 사회는 아무리 많은 문제를 겪어도 그로부터 아무런 이성적인 논리의 발전과 학습효과를 축적하지 못한다.

한 사회의 마지막 이성이어야 하는 법원의 판결조차 적지 않게 비이성적인 일탈을 거듭한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회의 비논리와 부조리는 패거리 문화만을 확대 재생산하고 사회는 무한 대립 속에서 발전의 동력을 잃어간다.

1992년 군부의 시대가 끝나가던 때 지정된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의 문제도 이러한 비상식적인 문화의 예외가 아니다. 매립지 지정 초기나 그 뒤에라도, 쓰레기 처리에 관한 과학적인 검토나, 대상지역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과 관리계획이 충분히 마련된 것이 없었다는 것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전개된 분쟁의 사례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저 편리한 위치에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땅과 강력하지만 임기적인 행정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문제 또한 우리 사회의 다른 문제들과 같이 세월의 경과에 따라 다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공해의 문제가 전 세계적인 과제로 등장하던 무렵부터 인류는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완전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일정한 성과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외부경제의 재산권적인 해결 방법이나 PPP(polluters pay principle 오염자 비용부담 원칙)원칙 같은 국제적인 기준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쓰레기 감소를 위한 물질적, 비물질적인 여러 방법들이 현실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고 생산된 쓰레기의 재활용과 소각, 매립, 분해 등 자연 환원 기술도 작지 않은 발전을 가져왔다. 일부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이러한 기술의 활용 수준은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무척이나 시끄럽고 날선 공방들이 오고가지만, 간추려 보자면, 현실적인 대안 부재론과 피해 부담의 한계론이 대책 없이 마주서고 있고 그 사이를 선동과 정치적인 계산이 헤집고 다니는 모습일 뿐이 아닌가.

물론 인천의 매립지에서도 이러저런 환경개선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시설의 개선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이 문제의 본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를 미화하고 덮고 가려는 수준의 장식적 효과에 머물렀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쓰레기를 만들고 처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만큼의 본질적이고 과학적인 고민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이 문제가 몇 가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원천적으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이 문제가 인천의 문제인 동시에 서울, 경기의 문제이며, 대한민국의 문제라는 것과, 이 나라의 쓰레기 처리에 있어 지속 가능성에 관한 과학의 문제이며, 인천 앞바다의 해양 쓰레기 문제를 비롯하여 인천의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모든 요인들과 연결되는 종합적인 문제라는 것에 사회적으로 동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감정적이거나 정략적인 접근 방법을 당연히 배제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난 연말에 개최된, 인천의 경제현실에 관한 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어느 연구자의 발표 내용을 보면, 인천시민은 일 년에 약 7조원의 소득을 서울을 비롯한 외지에서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경제라는 것이 원래 개방성(openness)의 문제를 큰 특징으로 하는 것이거니와 그중에서도 인천경제는 이와 같이 강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바꾸면 인천시민은 일 년에 약 7조 원어치의 소비와 관련한 쓰레기를 인천 외부에서 발생시키고 있다는 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천 시민 중 상당수는 직장을 서울 등 외지에 가지고 있으며 청라지구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인천의 신흥 개발지역이 서울의 베드타운화하고 있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요컨대 쓰레기 처리의 문제에 있어서 발생자 처리 원칙이나 지역분권주의 논리만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차피 매립 종료를 강행한다고 해도 인천 스스로도 대체 매립지를 쉽게 찾지 못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와 같은 지역 이기주의가 향후 인천에 어떠한 불이익을 가져오게 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백번을 접어 생각해 본다 해도 대한민국의 땅이 아닌 인천의 땅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중앙정부의 지휘 감독권을 설정하고 있는 현행 지방자치법의 규정을 고려하더라도 매립지를 인천만의 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을 갖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쓰레기의 발생에서 처리까지 새로운 제도와 과학적인 방법들을 도입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치적인 과정과 시민 캠페인, 연구와 시설에 대한 투자를 인천 혼자서 해 낼 수 있다는 상황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자칫 놓치고 가기 쉽지만, 매립지의 사정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인천 앞바다와 도서의 해양 쓰레기의 문제를 이 문제와 구별하여 다룰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방향으로 접근한다하더라도, 이 문제는, 제도의 개선과 대규모 자본의 지원이 없이는 적정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천 혼자의 힘만으로는 인천 스스로의 쓰레기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매립 종료를 선언한다고 해서 서울과 경기를 압박할 수 있을지언정 인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 것인가.

이제 4자협의체가 결성되고 매립지에 대한 소유권의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 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변화라는 사실을 부인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다만 이 문제가 단지 소유권의 문제 따위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로 시각을 넓히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라야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방자치법 제159조는 ‘2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사무를 공동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규약을 정하여 …… 지방자치단체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라고 하여 지방자치단체들이 결합하여 공동 사업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조합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협의체는 공동 재정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한계를 갖지만 자치단체 조합은 구성 목적 자체가 사업의 수행에 있다는 것이어서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다.

만일 인천시가 중심이 되어 쓰레기 문제의 공동 해결을 위한 조합 구성을 성사하고 서울시와 경기도의 조합출연금을 확보하게 된다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자본적 기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연구 개발 투자를 통하여 수도권 일대와 나아가 대한민국의 쓰레기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의 기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피해 주민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방안도 실질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해양 쓰레기 처리를 위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여 쓰레기 처리와 동시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합의하려는 의도’가 없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회담기구(會談機構)가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천사회 전반에 문제 해결의 의지가 확산되어야 하는 것이고 정략과 선동이 설 땅을 가질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선거공약은 그것이 이 사회를 위하여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유지되고 성립하는 것이라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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