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전민련에서 독자 정당 추진론자들이 이탈하고 일부 인사들이 보수 야당에 입당한 이후, 민중민주운동 진영은 전국연합으로 재편성됐으나 그 세력이나 위상은 약화돼갔다.

6월 항쟁 이후 시민들은 일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이 많아지고, 시민운동으로 불리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민주화운동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89년 11월 서울에서 경실련이 발족해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했다. 환경문제와 환경운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6월 항쟁 이후 부터다.

93년 문민정부 들어 시민운동은 더 활성화됐고, 사회운동의 주류가 체제변혁적 민주화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변했다. 인천에서는 89년 6월 목요회를 시작으로 시민운동 단체들이 차례로 결성돼기 시작해 94년까지 20여개가 창립됐다.

● 목요회 창립

6월 항쟁 이후 ‘민주쟁취 국민운동 인천본부’(국본)는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 매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목요회는 지역의 여론이 구심점을 잃고 허탈해 있을 때 신부, 목사, 교수 등 10여명으로 89년 6월29일 창립됐다.

창립 후 목요회는 지역의 큰 호응을 얻어 창립 2년 만에 변호사, 의사, 약사, 문화예술인 등 각계 전문직 40여명이 결합, 지역의 제반 문제를 해결해가는 대표적인 인천지역 시민단체로 자리잡았다.

회원들은 월례모임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논의하고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힘을 모았다. 그러나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정치적 견해는 밝히지 않도록 하여 시민단체로서 성격을 규정하려 했다. 인천의 민주화운동 단체에 대해서는 조언과 함께 사안에 따라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시 목요회는 ‘문화의 불모지이자, 낙후한 인천’에서 민간운동의 순수성을 인천의 현실에서 발현시켜야 할 새로운 시점에 와있다고 밝혀 지역성을 강조하는 한편, 낙후의 원인을 민주적 구심점의 부재,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 시민적 대안 제시 및 민주적인 의사반영 통로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했다.

일상 사업으로 강연회, 세미나, 시민상담 활동을 벌여나갔다. 지방자치, 환경, 의료, 교육 등 사회문제와 함께 선인학원 시립화, 계양산살리기, 굴업도 핵폐기장 대책위,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반대운동 등 지역현안에 적극 대응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 산보연, 건치

80년대 활발했던 노동운동에 대한 상담지원에서 나아가 산업재해, 직업병 등 조사연구 및 예방,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산보연)가 93년 6월 의료인들이 중심이 돼 창립됐다.

회원들은 창립 전부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병·의원에서 개별적으로 건강상담실 등을 운영해오기도 했는데, 이들을 통합하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 및 노동자 건강 증진을 위해 산보연을 창립했다.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 의료인과 변호사 등 40여명이 결합했다.

이들은 산업도시로서 인천이 높은 재해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목했다. 인천지역 전자업체를 중심으로 경견완 장애 등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를 실시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도록 했다.

산보연은 2002년 5월 인천지역 금속노동조합 후생복지, 산업안전 담당자들로 92년 6월 설립된 ‘산재없는 일터회’와 통합, ‘건강한 노동세상’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는 87년 6월항쟁을 통해 기점으로 모임이 이뤄지고 89년 4월 창립돼 의료소외 계층 지원사업 등을 통해 보건의료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다.

93년 8월 인천지역 개원의 10여명으로 서울경인지부 인천지회를 발족했다. 회원들은 의원에서 산재 상담활동을 벌이거나 노동조합 구강검진 사업 등 지역활동을 벌여왔으며 산보연 창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천지회는 94년 4월엔 ‘수돗물불소화 촉구 시민대책위’를 구성해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95년 11월에는 5.18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인천시 치과의사 서명을 주도해 전체 368명중 62%에 이르는 226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조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인천지회는 96년 12월 회원 40여명으로 인천지부로 승격했다.




93년 6월 창립된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는 92년 6월 창립된 ‘산재없는 일터회’와 통합했다. 양 단체 회원들이 2002년 5월 ‘건강한 노동세상’ 통합 창립대회를 갖고있다.

● 참교육학부모회, 경실련, 여성의 전화

89년 경실련 창립 이후 전국 규모 시민단체의 지역조직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인천에는 94년 말까지 참교육학부모회, 경실련, 건치, 건약, 우리밀운동, 여성의 전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의 지부(회)가 차례로 설립됐다.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는 89년 9월28일 부평1동 성당에서 창립됐다. 전국 16개 시도지부가 결합한 전국참교육학부모회와 동시에 창립됐다. 학부모회는 열악한 교육환경, 촌지문제 등 교육비리와 출세지향적인 입시경쟁 교육을 비판하며 교육의 본질을 캐물었다.

교육풍토가 교사와 학부모의 인격적 만남을 가로막고 교육의 한 주체인 학부모가 가족이기주의에 빠져 교육의 황폐화를 재촉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전교조가 창립되고 소속 교사들이 구속, 해직된 지 4개월 후에 창립된 참교육학부모회는 교사들의 대량해직 사태를 정권의 탄압으로 규정, 전교조의 실체를 인정하고 해직교사를 복직시키라고 요구했다.

경실련 인천지부는 본부 창립 3년3개월 후인 92년 10월10일 창립됐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투기, 재벌의 문제 등 경제 전반의 문제와 지역사회의 제반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취지문은 밝히고 있다.

인천이 특히 대규모 공단을 안고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 교통, 공해, 재개발 문제 등이 타 도시보다 열악한 형편임을 상기시키고 시민들의 주체적 의지를 불러모아 변화시키고자 했다.

인천경실련은 이후 초대 인천시의원 공약이행도조사를 시작으로 국회의원, 시장 공약이행도 조사 등 경제정의실천의 문제 보다 지역행정을 비롯한 지역문제 전반을 대상으로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95년 5월 주간 ‘인천시민의 신문’을 창간 발행했다.

94년 1월, 여성의 인권 보호와 가정, 사회에서의 성평등, 주체적인 사회참여를 목표로 인천 여성의 전화가 창립됐다. 창립 초기 매 맞는 아내의 문제, 성폭력 문제를 절실한 과제로 삼아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했으며, 95년 8월 성폭력상담소를 개설해 피해자 구제사업을 벌여나갔다.

94년 8월 한국여성의 전화(83년 6월 창립)에 지부로 가입했다. 여성의 전화는 93년 12월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97년 12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등 여성관련 법제 개선에 주도적으로 나서 결실을 거뒀다.

● 환경단체 창립

90년대 초반 인천지역 환경운동 단체의 창립이 두드러졌다. 공항, 신도시, 쓰레기매립장 등 대규모 국책사업과 개발이 지역민들의 소외 속에 진행되고 있었고 굴업도 핵폐기장, 계양산 개발 등 환경과 관련된 지역 현안이 부각됐다. 인천의 환경문제는 그 심각함과 더불어 일반 시민이 공감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제였다.

93년 5월 인하대에서 ‘배달환경’의 지역조직으로 인천배달환경이 창립돼 (영종)신공항촉진법 개정 운동 및 공항건설에 따른 생태파괴 현장조사을 벌여나갔다.

이후 배달환경은 ‘푸른한반도 되찾기시민모임’, ‘녹색당창당 준비위’ 와 연합해 녹색연합으로 재창립됐으며 인천녹색연합은 96년 7월 재창립됐다. 인천녹색연합은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주민환경피해조사, 동양화학 폐석회처리 및 난개발진상규명운동 등을 벌여나갔다.

93년 7월에는 천주교 사제와 평신도를 중심으로 가톨릭환경연구소가 출범했다. 성당 조직을 활용한 아바나다 운동 등 일상 생활문화, 습관의 개선을 통한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부천, 강화, 옹진지역까지 신자들을 대상으로 재활용품 수거, 재생사업 등을 확대해나갔다.

99년 4월 가톨릭환경연대로 개칭하고 대중성과 시민(운동)성을 강화했다. 인천녹지축 잇기 및 숲살리기운동, 경인운하 건설반대 운동 등을 전개했다.

94년 9월에는 청량산시민모임이 결성됐다. 시민들에 친숙한 청량산이 송도유원지 일대 녹지와 함께 개발,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던 때였다.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박사 등이 결합, 청량산의 생태, 훼손실태 등을 과학적으로 면밀히 검증해 알림으로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94년 12월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창립됐다. 환경운동연합은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를 계기로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이 전국 주요 환경단체와 통합해 93년 4월 창립됐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정경유착의 폐해 속의 개발 논리와 대항하고 자연환경적으로 바람직한 책임있는 대안 마련을 천명했다. 인천앞바다 갯펄 등 해양생태계 보존을 위해 지역의 힘을 모았으며 매해 인천 10대 환경사건을 발표해왔다.

● 우리밀, 우리농, 생협운동

우리밀살리기운동 인천본부가 93년 9월 창립됐다. 농산물 개방이 사실상 전면화되고 특히 밀 자급률이 급속히 떨어져 0.01%(91년)에 처한 현실에서 우리땅과 농촌을 살리자는 생명운동으로 출범했다.

89, 91년 호주, 캐나다에서 수입한 밀에서 각각 맹독성 농약과 발암물질이 잇달아 검출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우리밀 운동은 시민적 ‘생활실천 대안운동’을 호소했다. 우리밀운동 출범 1년만에 전국적으로 회원 4만명, 재배면적 150여만평으로 늘어났다.

인천본부는 가톨릭 신자를 중심으로 회원 4천8백명이 1만원씩 낸 기금으로 출범했다. 우리밀운동은 그러나 적자폭이 커지고, 2000년 농협으로 판매사업이 이관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우리밀의 소비공동체 생명운동은 96년 11월 농산물 직거래를 추진한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천주교 인천교구본부의 창립으로 이어졌고 생활협동조합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92년 10월 발기인 30여 명이 모여 갈산동 ‘부평생활협동조합’이, 93년 4월에는 만수동에 40여명이 푸른생협(현 연수동)을 창립했다. 인천지역에서 민주화, 민중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중심이 돼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운동을 모색했다.

생협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을 막는 친환경 유기농으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도시인 사이의 직거래를 통하여 공동의 경제적 향상을 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상호신뢰의 이웃 공동체 문화를 조성할 수 있었고, 교육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민 소모임 활동을 전개했다. 인천생협에서 분리해나간 남동, 계양생협을 포함, 인천에는 현재 먹거리를 주사업으로 하는 6개 생협과 의료생협, 교육생협, 대학생협 2곳 등 모두 10개 생협이 활동하고 있다.

● 해반문화사랑회, 서해광장 창립

94년 2월, 서울의 그늘에서 척박했던 인천의 문화 환경에서 ‘문화 NGO’를 표방하며 해반문화사랑회가 창립됐다. 91년 부터 기획 전시를 벌여오던 송림동 해반갤러리를 기반으로 문을 열고 지역사랑, 문화사랑, 인간사랑을 이념으로 인천 근대문화 유산 재발견 등 향토문화를 비롯한 지역문화를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활동을 벌였다.




94년 2월 창립된 해반문화사랑회는 95년 10월부터 해반문화포럼을 열고 지역문화 담론들을 쌓아갔다. 사진은 96년 4월 ‘인천 문학적 상징물들의 문제점’을 주제로 연 제7회 해반문화포럼.

95년 10월부터 해반문화포럼을 통해 지역문화의 담론을 쌓았고 한국의 근대문화를 주도한 인천의 개화기 문화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탐색을 해왔다. 인천지역 엘리트 정주의식 조사보고, 인천시 중장기 문화정책 보고, ‘포용과 융합’의 인천의 정체성 연구에 공들였다.

94년 4월에는 6월 항쟁 이전부터 지역 민주민중운동에 몸담아온 인사들이 중심이 돼 ‘서해광장’을 창립했다. 93년 7월 경 대선 후 민중운동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모임을 가져온 것이 모태됐다.

서해광장은 월례포럼을 개최하며 사회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소통과 교류의 장을 열고자 했으며, 민주민중운동의 미래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큰 변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올바른 사회개혁과 민주주의를 위해 여론을 모았다. ‘핵에너지 정책, 핵폐기장 무엇이 진실인가’, ‘생태형 복지운동’, ‘인천의 교통문제-지하철을 중심으로’ 등이 월례포럼의 주제였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6월항쟁 ~ 94년 인천지역 시민단체 창립현황>

단체명 창립연월 초대대표 조직 변동사항

목요회 89.6 김병상 인천 -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 89.9 김흥수 전국 -
경실련 인천지부 92.10 오경환 임송산 전국 -
부평생협 92.11 정연실 인천 /97.11 인천생협으로 명칭변경
푸른생협 93.4 권혁찬 인천 -
인천배달환경 93.5 - 전국 96.7 인천녹색연합으로 명칭변경 재창립(대표 이순신)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원 93.6 홍학기 문병호 인천 /02.5‘건강한 노동세상’으로 통합
가톨릭환경연구소 93.7 유영훈 인천 /99.4 가톨릭환경연대로 명칭변경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회 93.8 김유성 전국 /96.6 인천지부로 승격
우리밀살리기운동 인천본부 93.9 황보윤식 전국 /2000년 판매사업 농협이관
인천여성의전화 94.1 김예숙 전국 -
해반문화사랑회 94.2 이흥우 인천 -
청량산살리기시민모임94.4 하석용 인천 99.2 /한국유네스코인천지부 환경분과와 통합
서해광장 94.4 정화영 인천 /99.6 해산
인천환경운동연합 94.12 최원식 호인수 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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