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누구에게나 깨달아가는 것들도 그만큼 늘어가게 마련이다. 혈기 방장하던 시절에 제아무리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쳐대던 사람들도, 인생은 개척하기 나름이고 내가 만들기 마련이라고 기개를 보이던 어떤 사람들도 시간의 힘을 배우게 마련이고 ‘유한하다’라는 것과 ‘상대적이다’라는 것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 깨달아가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 중 하나가 평생의 짝을 만난다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한 평생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느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테고 그중에서도 평생을 함께할 짝을 만나는 것만큼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도 달리 생각하기 어려울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중대한 사건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과 함께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의 운명적인 연결을 담당한다는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전설이 생겨나기도 하고 혼인에 대한 칭송만큼이나 부정적인 경구(警句)가 넘쳐나기도 한다.

요컨대 남녀가 짝을 이루는 문제는 어느 성현이라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만큼 가벼이 다룰 일도, 쉽게 이야기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이 나라에서는 최고의 권력 집단들 사이에서 바로 이 인륜지대사가 마치 개그(gag)의 한 토막처럼 굴러다닌다.

혼자 살면 세금을 물리자 느니 혼인을 하면 나라가 집을 주자는 둥, 농담이라고 해도 심하다 싶은 이야기가 이 나라 최고급의 위신을 갖춘 인사들의 입에서 굴러 나온다.

이 나라 정치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무철학적 상태야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이 정도에 이르고 나면 차라리 이들을 모조리 쓸어내 줄 혁명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극단의 생각에 이르게 된다.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상 혼자 산다고 세금을 물리는 나라가 있었는지, 헌법상의 근거까지 갈 것도 없이 그러한 발상이 어떠한 인문학적 근거로 가능한 것인지 물어야 할 가치까지도 없는 것이겠지만 그냥 외면하고 지나갈 수도 없는 이 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혼인하지 않는다고 페널티까지 물린다면, 그렇게 나라가 강제해서 탄생한 가정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 가정의 자녀들은 이제 모두 나라가 길러줄 것인가? 혼인을 하고 자녀를 갖지 않는다면? 혼인을 했다가 헤어진다면?

이제 이 나라는 개인의 삶을 모두 국가가 참견할 셈인가?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꿈꾸는 단일계급의 사회를 공산사회라 하는 것이고, 이렇게 혼인과 자녀의 생산까지 국가가 강제하는 나라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경쟁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소위 보수 정부의 국가관인가.

혼인을 하면 집을 주자는 발상은 또 무언가. 한 개인의 삶은 어디까지가 개인의 권리와 책임 영역이고 얼마만큼이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인지 이 나라에는 합의가 있는가. 누구의 주머니를 털어 누구의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사회는 합의할 수 있는가.

혼인이 집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된다면 그에 상응하여 그들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무엇인가. 이 사회는 이제 모든 개인의 책임을 집단화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것이고, 가정은 단지 자녀를 생산하기 위한 사회적 단위조직이라는 말인가.

집을 마련해 주고 나면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가. 혼인과 이혼을 집 한 채의 유혹으로 통제할 셈인가. 도대체 이 나라에서 독신주의자들을 차별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아무리 미래 인구예측이 부정적이고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더라도, 아무리 이 사회가 열린사회이고, 어차피 끝 갈 데까지 모두 경험한 사회라 할지라도 정부와 국회가 이렇게까지 유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터뜨리는 표의 매수공작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제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에 달리 의문이 있을 수 없고, 미래 인구의 감소문제는 인력의 문호 개방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언제까지 우리사회만이 단일민족 신화 속에서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그것이 다른 민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민족주의의 바람직한 모습도 아니다. 이제 바야흐로 민족에 대한 우리 인식에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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