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 라는 빌 클린턴의 과거 미국 대통령 후보 시절 구호가 보여주듯이 경제정책이 정권 생존의 절대적인 전제가 된 것은 이제 전 지구적인 상식이다.

당연히 우리의 역대 정권들도 지키지 못할 것일망정 여러 가지 경제정책들을 내걸며 득표 전쟁을 벌여왔고, 그 내용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유권자들은 그러한 명제들을 투표 선택의 명분(실제로 선택의 도장을 찍는 기준과는 상관이 없지만)으로 삼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세계화’ ‘남북경협’ ‘기초생활보장’ ‘친서민적 복지경제’ ‘전 국토의 균형발전’ ‘녹색성장’ 따위 정권별 주된 경제정책들의 용어를 익숙하게 외우고 있다.

그러한 정권별 정책들이 어떠한 공과를 남겼는지는 이를 해석하는 입장과 시각에 따라 아직 천지차로 갈리고 있는 중이지만 독재의 효과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문민정부 성립 이후만 일별하여 본다면 딱히 감동적인 성공 사례를 남긴 정권과 정책의 사례를 기억하기 어렵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라는 획기적인 경제 체제의 변화를 가져온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들은 어설픈 세계화의 추진과 이어 몰아닥친 IMF사태라는 미증유의 태풍을 맞아 우파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고, 뒤를 이어 김대중 정권은 “Buy Korea”의 구호를 내세우며 IMF 사태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사태의 조기 극복이라는 공적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나라의 자산들을 무분별하게 떨이로 매각하고 외국 자본의 요구에 무기력하게 굴복함으로써 경제 자주성의 상실을 가져왔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햇볕정책이라는 남북경협의 모델 또한 퍼주기 논쟁을 불러왔고 친서민적 복지 정책들은 ‘공짜논쟁’으로 인한 사회적 이데올로기 분열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본격적인 적자 재정의 단초를 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국민들의 카드빚은 이제 대한민국 경제의 시한폭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스스로 폐족(廢族)을 자임하며 막을 내린 노무현 정부가 임기 내내 추진한 전 국토의 균형발전 정책은 세종행정복합도시라는 난제와 전국의 모든 도시들에 개발의 숙제만을 안겨 놓은 채 과다한 토지보상가의 지출로 역설적이게도 좌파정권으로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인플레이션 효과만을 남겼다는 지적을 받는다.

보수정권의 권토중래를 실현한 이명박 정부는 철 지난 신 뉴딜 정책에 의해서일망정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라는 세계금융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무 것으로도 속을 채우지 못한 녹색성장전략의 구호 속에서, 속절없이 운하와 4대강 논쟁에만 매달리다가 5년의 세월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사정을 헤아리고 보면 그 뒤를 잇는 박근혜 정부가 내놓을 새로운 경제 정책의 이름 짓기도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럴듯한 용어들은 앞의 정권들에 의해 모두 소진이 된 상태이고, 논쟁이 요란하였지만 개념 정리도 되지 않은 경제민주화 따위의 용어를 내걸기도 주저되었을 것이고…, 사정이 오죽했으면 ‘창조경제’라고 했을까 싶다.

유사 이래 인류가 살아온 경제사가 그 자체로서 창조의 역사이었던 것이고 인간의 경제적인 행위라는 것이 새로운 소비와 그에 부응하는 공급을 위한 창조적인 활동의 집합일진대 무슨 새삼스레 창조경제라는 말이 구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기왕에 거두어들이지 못할 창조경제에 시비를 걸기보다는 그러한 창조경제의 모습을 끝내 창조하지 못하여 낙마한 현오석 경제팀의 뒤를 잇는 최경환 경제의 모습을 저울질하기에 마음이 급하다.

요약하거니와 현재 진행 중인 최경환 표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전략은, ① ICT(정보통신기술)에 접목한 서비스 산업의 육성, ② 규제개혁, ③ 기업유보자산 과세로 대표되는 증세, ④ LTV, DTI 규제완화로 표현되는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대출규제 완화 정책 등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미 이에 대한 평가와 논쟁도 시중의 모든 보도 매체들과 연구기관들이 나서서 갑론을박을 진행 중이고 벌써부터 지지와 비판으로 패가 갈리는 모습이니 그러한 이전투구에 새삼스레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러한 경제정책들이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일관된 논리구조에서 비롯하는 상호 연결성과 전략적인 치밀성, 실현가능성, 미래 영향에 대한 책임성에 있어서, 이 최경환 표 경제 전략은 대단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을 생략할 수가 없다.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왜 하필이면 창조의 핵심 산업인 제조업을 전략적 지원산업에서 제외하는 것이며, 아직 국내에서 구조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서비스업을 거론하면서 어떤 서비스업을 어떤 목표 값으로 육성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책이 어떻게 현장에서 실현이 보장될 것인가.

규제개혁이라는 해묵은 과제 속에는 수없이 많은 누적된 이념적인 대결과 집단 이기주의의 유산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겠거니와 이러한 막연한 구호보다는 창조경제론과 연결하여 구체적인 지원 업종과 분야, 목표 값을 제시하여 접근하여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투자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국제적인 경쟁의 피로감 속에서 방황하는 기업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이중과세의 논쟁이 끝나지도 않은 법인의 유보소득에 다시 과세를 강행한다면 그러한 기업의 국제적인 경쟁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보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증세라는 전략은 대통령 선거 공약관련 복지재정의 충당을 위한 비생산적정책일 뿐 창조적기업의 육성과 지원이라는 정책과 배반하는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 부작용과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건설경기의 부양에 목을 매는 듯한 모습이야말로 역대 정권이 일시적인 경기부양을 위하여 가장 손쉽게 동원하던 마약과도 같은 비창조적이고 무책임한 정책이 아닌가. 이러한 정책들이 어떻게 창조적인가.

무엇보다도 최경환 장관은 정치인으로서 그가 진행하는 정책들은 다음 총선을 고려할 경우 앞으로 1년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짧은 세월 속에 이렇게 논리적 깊이 없이 추진된 정책들이 또 다시 이 나라 경제에 헤집어 놓은 상처만 더 하게 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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