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발전한다.” “선거야말로 민주주의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증거다.” 선거와 민주주의를 엮는 미사여구는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가슴 섬뜩한 선거에 대한 경구와 풍자 또한 얼마든지 많다.

그중 “아미엘의 일기”로 유명한 프랑스계 스위스 철학자 H.F.아미엘이 그의 일기에 남긴 “대중을 자신의 도구로 삼기 위해 대중에게 아첨하는 것이 대개 선거의 마술사, 선거의 사기꾼들이 하는 일이다.”라는 말은 오늘까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 번의 선거는 사람의 목숨을 한 달씩은 감수시킨다. 나는 평생 열 네 번의 선거를 치렀고 그런 쓸데없는 말싸움으로 14개월의 인생을 헛되이 보낸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우울해 진다.”라는 처칠의 이야기는 이쪽 세계에서 유명한 풍자다.

왕에 의한 일인 통치를 부정함으로써 성립하는 민주주의에 있어, 임기(任期)에 의해 통제되는 권력자를 선출하는 “선거”는 피할 수 없는 안전장치다. 그것이 아무리 번거롭고 고통과 낭비를 동반하는 과정일지라도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한, 인류는 아직 다른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류는 이 제도가 갖는 현실적인 쓰라림을 위무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집권을 위한 쟁투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앞에서와 같은 희망의 언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 제 아무리 선거를 축제라고 미화하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하는 선언적인 수사(修辭)를 앞세운다 할지라도, 선거는 현실적으로, 왕 한사람에게 집중되었던 통치권을 분산하여 행사하는 권력자들을 선출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은 권력의 점유를 위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통치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 동시에 종복(從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피통치자들의 안타까운 희망사항일 수는 있어도 인류역사상 별로 실현된 적이 없는 비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불합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러한 요구는 플라톤의 성군(聖君)이나 세종 임금 같은 정치인이 지속적으로 탄생하기를 희망하는 실현 불가능한 바람일 것이다.

대개 그런 이치로 선거가 끝나는 순간 모든 당선자들은 “표의 걸객(乞客)”으로부터 당당하게 자신에게 나누어진 권력의 자리로 옮겨간다.

당초 민주주의를 성립시킨 권력을 향한 투쟁과정이나 인간이 가지는 지적 정서적 한계를 고려할 때에 이러한 현상은 크게 잘못된 것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소위 국민이라고 불리는 어떤 개인이라도 그러한 상황이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에는 모두 그렇게 할 것이라면 그런 것을 보편적이라고 하고 상식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이 아무리 타당하다 할지라도, 그래서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당선인들이 공복은커녕 일정한 권력의 분점자(分占者)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제도는 왕의 독재로부터 인류의 좀 더 나은 인격적인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선택된 것이며, 따라서 선거를 통해 선택된 왕들에게는 제왕적인 지배의 권리에 앞서 사회 구성원의 좀 더 나은 인격적인 삶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된다.

요컨대 민주주의에 의해 권력자들에게 부여되는 권한은 그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유효한 것이라는 것이다.

제6회 지방선거가 오늘로써 막을 내린다. 내일이면 많은 새로운 권력자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과연 몇이나 이러한 의무를 이해하고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선거과정 내내 내가 인식하고 있는 인천의 문제에 정통한 권력의 지망생들을 별로 찾아보지 못한 탓이다.

민주 사회의 문제는 선거를 통해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선출된 권력은 선거를 통해 바른 의무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인천의 경제, 재정, 도시계획, 문화…, 산적한 문제들이 과연 답을 찾았는지 의문이다.

자신의 의무에 대해 바로 공부하지 못한 채 선출된 권력들은 또 다시 자신의 무지를 사회에 이입하려는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왕의 권력이 되려고 할 것이다. 또 다시 이 도시는 권력의 신성한 목표가 되기보다는 오로지 권력의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시안 게임이 끝난 뒤 차갑게 불어올 겨울바람이 벌써부터 걱정인데 권력자들을 공부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미 싫도록 경험한 뒤이고….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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