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 쓰는 석사모.

오는 14일 수원대 졸업식장에서 사각의 석사모(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서예과정)를 쓰는 여숙자씨(61·인천시 남동구 도림동).

뒤늦게 핀 향학의 불꽃은 방통대 졸업(2002년)에 이어 석사과정까지 마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농사짓는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다른 것은 다 뒷전이었어요. 막내가 군에 들어가고 나서야 마음에만 계속 품었던 서예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죠. 유명 서예가 선생님들 찾아다니며 배운다고 했어도 집살림에 농사일 거들며 하느라 변변히 붓 잡았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워요.”

인천에서는 농사짓는 서예가로 통하는 여씨. 30여년전 남편 배재완씨와 함께 한적한 시골땅이었던 지금의 터전(숫골마을)에 자리잡은 그는 두 아이 기르며 농부의 아내로 부지런하고 검박한 한평생을 살았다. 내외가 재배하는 무농약토마토 등은 우수한 맛과 품질로 지역내외에서 인기가 높다.

여씨는 일과가 끝난 밤시간을 활용해 먹을 갈고 붓을 다듬으며 한 획 한 획 쌓아온 실력으로 인천시 추천작가 반열에 올랐고, 대한민국서예술대전 등 전국대회 다수 입상으로 이어졌다.

“필력이 남다르셨던 장인어른의 영향으로 아내가 서예에 애착을 갖게 됐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경지는 순전히 땀으로 일군 결실이지요. 겉으로는 부드러우면서 안으로는 강한 사람입니다.”

고려대 농대를 나와 땅을 살리고, 작물도 살리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남편은 아내의 은근한 끈기와 노력을 귀띔했다. “아니예요.

비싼 등록금 걱정하며 망설일 때 흔쾌히 지지해주고, 강의 듣는다고 밤늦고, 농사일도 소홀할 수밖에 없는 저를 묵묵히 후원해준 남편이 없었으면 대학원 졸업은 감히 꿈도 못꾸지요.

서예계 실력있는 교수님 등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고, 이론공부도 실컷 할 수 있었던 지난 2년반은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오히려 남편의 외조가 컸다며 아내는 조용히 웃는다. 여씨는 지난해 12월14일부터 20일까지 연수구청갤러리에서 석사청구전이자 생애 첫 개인전을 연데 이어 논문까지 준비하느라 힘들었지만 가족, 호인수 신부(부천 고강동 천주교회) 등 지인, 이웃의 응원이 모여 석사졸업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며 고마워했다.

더욱이 이 대학원 서예과정의 유일한, 첫 석사졸업생이어서 의미는 남다르다.

‘숫골묵향.’ 집 옆 간이건물에 마련한 소박한 서실에서 여씨는 자신의 공부는 물론 동네 주민을 위한 서예교실도 열 계획이다.

성당내 노인학교에서는 무료 서예교실도 열고 있다. 여씨는 건강할 때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정진을 거듭해야 할텐데 잘 될지 모르겠다며 겸손해했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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