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올해 인천에는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 지망생들이 저마다 책을 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책을 뿌렸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 이러한 뛰어난 정치적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지 못했다. 원래 과문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외국에서도 이렇게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온통 책을 펴낸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인간들이 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무언가 그렇게 해야 하는 필요가 동반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책을 쓰는 데에도 분명히 무언가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일일이 한 사람씩 붙잡고 물어보지도 못할 일이니 혼자서, 별로 쓸모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러저런 까닭을 짐작해 본다.

옛날 많은 우리의 어머니들은 흔히 “내 일생을 소설로 쓰면 노벨상을 몇 개라도 받았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렇게 책을 쓴 어머니들은 없다. 나도 일주일에 몇 편 씩 이러저런 글들을 끊임없이 써대고 있고 강의 교재를 써야할 필요가 있기도 하지만 아직 “저서”라는 것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쓴다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 많은 지식과 경험, 사색, 거기에다 문재(文才)도 갖추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책만을 쓸 수 있는 시간의 여유까지 확보해야 한다.

그러니 책을 쓴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하지 못하는 “잘난 짓”이고, 그래서 저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주 잘 난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언제나 가장 잘 난 사람으로 남들에게 보여야 하는 정치인들이 저서를 갖는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책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고 장점을 마음대로 자랑까지 할 수 있는데다가 수입까지 따라온다면 거부할 수 없는 대박이 아닌가.

그런데 타고난 천성 탓인지 내게 이런 풍광은 썩 곱게 보이지가 않는다. 몇 천 몇 만권의 장서를 자랑하고 독서량을 자랑하는 모습도 내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탓도 있으려니와 별로 크게 멋있어 보이질 않는다.

일찍이 “책”에 대한 수없이 많은 현철(賢哲)들의 촌철살인 하는 명문현사(名文賢辭)가 가득하지만 그 내용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월든”의 저자로 유명한 H.D.소로는 “책은 세계의 보배이며, 모든 세대를 넘어, 모든 국민들이 상속받아야 하는 자산이다.”라고 극단적인 칭송을 하였는가 하면 영국의 수상을 지낸 B.디즈레일리 같은 이는 “책은 인간의 저주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찮은 것이며, 좋은 책이라는 것은 왜 그 책들이 시원찮은 것인지를 논증하는 것이다.”라는 정도의 증오를 보이기도 한다.

서중자유만종록(書中自有萬鍾祿 책 속에 많은 재물이 들어있다) 같은 중국식 실리주의가 있는가 하면,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암소가 마시면 젖이 된다.”라는 불가(佛家)의 지식에 대한 각성과 경계의 가르침도 있다.

그렇다. 아무리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고 해서 많은 독서량을 칭송하는 것이 우리 전래의 미덕이라 하더라도, 책이라고 해서 다 좋은 책도 아니고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저 모두 착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짐작하거니와 책을 읽기 위해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책을 제대로 고르고 그 내용을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운영체계가 내 심상과 머릿속에 사전에 깔려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 자리가 독사가 아닌 암소와 같이 인간 세상에 유익한 인격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리라.

유네스코가 세계적으로 책읽기를 권고하고 세계 책의 수도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네스코의 이념은 그 헌장에 명시하였듯이 인류 평화의 달성에 있고, 유네스코는 그러한 평화가 인류가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서 비롯하여 유네스코는 “책”이 그러한 인류의 인격적 기초를 만드는 중요한 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책들로 온통 칠갑을 하는 사회, 하루에 온 국민이 평균 3시간 34분을 스마트 폰으로 소비한다는 사회, 도무지 책을 읽어야 할 필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 사회가, 책을 읽는 기초의 형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18가지의 돈으로 하는 사업들만으로 세계 책의 수도가 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방향부터 제대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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