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들은 생명의 대(代)를 바꾸는 과정을 통해 진화를 거듭한다. 한 생명체가 일생을 통하여 학습한 효과들을 정보화하여 축적하고 그러한 정보가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변화된 DNA를 통하여 새로운 형질을 발현하는 것을 현대 생명과학은 진화라고 부른다.

인간의 정치도 이와 같이 대개, 지배자, 왕조, 정치 시스템 등의 세대 교체과정을 통하여 진화하였다.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 오늘 인류가 도달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제도이다.

당연히 이 제도도 언젠가는 변화하여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한 대안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이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는 스스로의 진화를 보장하는, 그 이전의 정치체제 속에는 없었던 장치가 장착되어 있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좀 오래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학자들 사이에 우세한 것 같다.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한 여러 장치들 중에서도 선거라는 제도는 집권 주체의 교체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어떤 정치제도와 비교하더라도 가장 인간적이고 이상적인 장치인 것에 틀림이 없다.

결국 민주적인 사회는 마치 생명체의 세대교체와 같이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좀 더 나은 사회로 진화하는 것이고, 그러한 현상이 무리 없이 진행되는 사회가 안정적인 사회, 발전적인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은, 평소 그 사회가 여러 분야에서 학습하는 모든 경험들을 냉철하게 성찰하고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마침내 선거과정에서 그 축적된 역량을 유감없이 투영할 수 있는 사회를 뜻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사회에서 선거에 후보로 나서는 인물들은 사회의 진화된 DNA가 자신에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정치의 세대교체를 담당하고 나아가 사회의 진화를 담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그 사회에 축적된 지적 물적 역사적 문화적 자산에 정통하고 그것들의 최선의 활용 방안에 대한 정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인 귀결이 언제나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준비된 인사들보다는 야심가와 처세가, 심지어 출세의 욕심밖에는 갖춘 것이 없는 속칭 정치건달들이 너무도 빈번히 유권자들의 눈을 가리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론이 날로 넓고 깊게 퍼져만 가고 선거를 할 때마다 사회는 오히려 역진(逆進)에 역진을 거듭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인천이 그렇지 않은가.

또 다시 이 사회에 대한 그들의 설익은 식견의 수준을 보여주는 소위 신념과 공약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어느 도시에나 굴러다니는 아무 특성 없는 개발 전략들, 최소한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허황한 거대 담론들, 시기에 맞지 않고, 장소에 맞지 않고, 이 도시에 합당치 않은 거친 공약들이 유권자들을 혼란시키는 현란한 언어들로 포장된다. 

그런 허풍으로 마치 그들은 시대를 앞서 바라보는 선각자나 위대한 시대의 지도자쯤으로 포장되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주장하는 신념과 공약 덕분에 이 사회가 진화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민선 지방자치가 다시 시작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이 도시는 경제에 코어(core 核)를 잃고 무기력하게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중이고 성장률은 대개 전국의 평균도 따라잡기가 힘겹다. 경제에 코어가 붕괴하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 없건만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 덩치만 큰 항구에는 작은 범선의 부러진 마스트 하나를 고칠 수 있는 조선소가 없고 이 항구에서는 배가 선급품(船給品)을 조달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어항도 수산물 가공산업도 없다. 이 도시에는 세계의 항구들에 넘치는 시끌벅적한 항만의 흥분과 풍요가 없다. 이 항구가 앞바다에 가지고 있는 150개의 섬들에는 5,000년의 역사가 엎드려 있지만 이 섬들은 하나같이 적막강산일 뿐이다.

그런데 이 도시의 정치인들은 이 도시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유비쿼터스를 이야기하고 카지노를 이야기하며 롯본기힐스를 이야기 한다. 갑문식 도크의 축항에 수변공간을 만든다하고 이 도시가 통일의 전진기지라는 선각을 이야기 한다.

목하(目下), 항구를 모르고, 이 도시를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이 도시가 진화한다는 비과학이 또 다시 광분하고 있다. 이번 선거가 또 이 도시를 어디로 데려가려는지…./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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