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글이 쓰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이유는 그 흔적과 증거가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지어진 글들조차도 웬만큼 주목을 받는 경우가 아닌 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 지워지고 잊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하잘 것 없는 삶의 기록들을 만년을 견딜 것 같은 바위 위에 깊숙이 새겨 넣기를 열망한다.

결국 이집트의 신전과 파라오들의 무덤 석곽을 비롯해서 중국 태산의 거대한 석벽, 한반도 북쪽 땅 금강산의 자태 고운 화강암벽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돌이 있는 곳이라면 대개 인간들의 영원에 대한 욕심의 자국들로 그득하다.

오래 남아 더욱 조심스러운 글쓰기

순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리만큼 스치듯 지나가는 한 조각 인생에 대한 지독한 미련함이 낙서로 남는 형태도 다양하다.

알타미라 동굴이나 우리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인간의 원천적인 묘사본능을 보여주거나 로제타 스톤이나 마야와 잉카의 유적 같이 역사와 문화의 기록본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동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부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와 같이 제왕들의 허세의 도구가 되는 경우도 많고, 중국의 절경들에서 만나는 시인묵객들의 풍류의 흔적들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형태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일찍부터 예의와 겸손의 미덕이 발달한 한반도에서는 비교적 이러한 미련한 허영이 절제되어 온 경향이 있어 금석문 중에 광개토호태왕비 정도를 제외하고는 순수비나 척경비 등 실무적인 정계비(定界碑) 이외에 제왕 개인을 위한 허세의 기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조선 왕조에 와서도 왕릉의 정자각(丁字閣)을 한 걸음 비켜서서 신도비(神道碑)를 세워 주인공의 행적을 간략하게 기록하는 절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시간이야말로 절대적인 희소자원으로서 그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며 그러한 꿈을 꾸는 것 자체가 권력의 차별성을 낳는다.

불멸을 꿈꾸는 것은 파라오와 진시황 따위 아주 특별한 인간들의 특권이며 한 인간의 기록을 바위에 새기어 그 추억을 길게 가지는 것조차 권력의 상징이다. 그래서 절제가 발달한 조선의 선비 사회 속에서도 마침내 격을 넘는 신도비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의 타락이 생겨나고 심지어 승려들의 호화찬란한 부도비와 신도비까지 참람(僭濫)함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시민의 공감대… 사전작업 충분했나

인천시가 지어낸 인천선언문이 여론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아마도 인천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얻은 지 600년 되는 해를 기념하여 인천의 정체를 대내외에 선양, 표창하고 발전 방향을 밝혀 인천시민의 기개를 흥분 고양하고자 하는 데에 뜻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 행정부의 의도는 이 문건의 작성 과정에서부터 당초의 의도를 벗어나면서 인천사회에서 물의를 빚었다.

도시 정명(定名)의 의미부터 시민 다수의 공감대를 구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충분하지 못했던 데다가, 인천의 역사에 대한 비전문적인 인식수준 위에, 시민적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는 비전 아닌 비전을 낯선 운문적 수사학과 풍수설로 버무리다 보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비난들이 터져 나왔다.

나 또한 스스로도 온 천지에 잡문을 퍼뜨리고 사는 주제를 잊고 인천의 한 계간지의 지면을 빌어 이 선언문을 ‘또 하나의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이 자리에 그 부분을 다시 옮겨 적지는 않거니와 이러한 글이 인천의 오늘을 표상하는 명문(銘文)으로 남는다면 나의 재주와 상관없이 차마 그 부끄러움을 함께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였다.

문화도시에서 막무가내 통용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이 선언문을 예산 3억 원을 들여 비를 세워 기리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돈도 많다 싶기도 하고 그저 아연하다.

물론 이 글을 작성한 본인들이야 아무리 다시 읽어보아도 명문 중의 명문으로 보일 수도 있고 이 글로 비롯하여 인천의 새 천년이 한 걸음에 성큼 다가서는 환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어찌 이러한 절세의 명문을 바위에 새기지 않을 수 있겠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백 번을 양보하고 보아도 유네스코가 지정한 책의 수도라는 문화 도시에서 이 같은 막무가내가 통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수치를 모르는 개인들의 파렴치야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죄 없는 도시가 그 부끄러움을 천세에 함께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고부군수 조병갑의 선정비를 닮은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가. 시민여러분의 인천선언문 일독을 권한다./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