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나는 나의 외모에 대해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었던 것 같다. 노동현장을 헤매던 시절에는 늘 무채색의 점퍼와 진 바지 한 벌이었고, 공직에 있던 시절에는 거의 예외 없이 감색계열의 싱글 수트, 흰 드레스셔츠, 감색이나 검정계열의 넥타이가 전부였다. 암암리에 나는 그러한 나의 의상들이 나의 개성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받아들였고 그걸 쉽게 양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17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소위 자유직업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그때까지 만난 적이 없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지역의 케이블 TV 진행을 여러 해 경험하면서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컬러가 있는 의상들에 대해 용감해졌고 그토록 다양한 형태의 의상 디자인이 인간 세상에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통하여 나는, 나의 정체는 확정되어 있지도 고정되어 있는 것도, 그래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과 삼라만상은 무한한 다면성을 갖는다는 평범한 이치를 수용하게 된다. 그래서 내게 국민성 따위를, 그것도 특히 적대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런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한다할지라도 2014년 삼일절에 일본인들의 국민성을 한 번쯤 짚어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말썽이 많았던 민족이니만큼 일본인들의 속성에 대한 분석의 사례는 많다. 대표적으로, 루스 베네딕트라는 미국의 한 여성인류학자가 일본인들이 가지는 중층적(重層的) 인격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한 국화와 칼이라는 분석서가 유명하고, 일본인 학자 스스로들이 분석한 “일본에는 가족이 없다”라거나, “한자가 도래하기 전 일본의 언어에는 믿는다(信)라는 표현이 없었다”라는 등의 일본인의 문화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한 어원학적인 연구도 존재한다.

그밖에도, 스스로를 동양인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의사백인주의(擬似白人主義 Pseudo Caucasianism), 앞에 드러내는 표현과 속마음이 다른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혼네(本音)와 다데마에(建前)론 거기서 비롯하는 유난스런 친절의식, 철저하게 현세기복적(現世祈福的)이며 현세구원적(現世救援的)인 신앙체계 신도(神道 Shinto),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별호가 난 조직에 대한 충성심, 경제 동물론(Economic animal) 같은 언어들이 일본인의 정체를 수식한다.

물론 일본인들의 이러한 독특한 개성도 일본의 자연환경과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기방어

일본은 자연환경이 대단히 인간 친화적이지 않은 곳이다. 지구상 인류가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 중에서 지진 태풍 따위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가장 많은 지역에 속한다. 당연히 토지의 생산성도 낮았다. 그 속에서 막무가내로 남의 것을 약탈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왜구의 조직화가 일찍이 발생하고 이러한 진행과정을 거쳐 장기에 걸친 잔인한 무인지배 시대의 싹이 튼다.

12세기부터 시작해서 19세기 후반까지 무려 700년 가까이 쇼군(將軍)과 다이묘(大名)를 중심으로 진행된 무사들 간의 권력과 영지 싸움은 실로 잔혹한 것이었다.

전투력(男性 戰士)이 고갈될 정도로 서로 죽이고 죽은 전쟁과 전쟁 속에서 무사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 멋있게 죽는다는 살벌한 죽음의 미학을 창조한 반면, 민중들이 매달린 것은 오직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기 방어의 본능과 철저한 조직에의 귀속이었다.

본을 지배하는 조직의 논리라는 오야붕(親分)과 꼬붕(子分)의 관계는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 일본인들의 이해하기 힘든 속성 중 많은 부분이 이렇게 조직폭력 집단의 문화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을 문화적 DNA

이러한 일본인들의 문화적 DNA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또 다른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그러한 선택은 그들의 몫일뿐 그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시키고 망언을 일삼는 주한 대사라면 지체 없이 즉각 추방하는 단호함만이 조직 폭력배들을 상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경제를 걱정할 때는 아니다. 일본을 대신하여 개척할 시장은 세계에 널렸고 조직 폭력배들은 돈 되는 일을 정치적 관계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는 이러한 일본인의 정체를 확정하는 데에 조심스럽다. 그들 속에서도 다양한 철학과 신인류가 자라고 있고 그들도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이 오늘을 규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고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속없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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