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초에 첫 의뢰인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금년에는 얼마나 많은 의뢰인들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만날까.

 
일반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은 우발적이거나 일회성인 사건이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사 사건에 관한 한 순간적인 기분으로 변호사를 찾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야말로 참고 참다가 더 이상은 가망이 없겠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였지만 그 것도 혼자의 힘으로는 잘 되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법률의 힘을 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사상담은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만을 알아서는 해결이 안된다.

부부 갈등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태동된 것인지, 정말 이혼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두 부부의 상태가 심각한 것인지, 그 상태는 치유될 수 없는 것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상황분석을 해야한다.

올해의 첫 내담자는 작년부터 진행 중이던 이혼 사건을 취하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는 18년 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지독한 고부갈등도 경험하면서도, 자동차정비소를 운영하는 남편을 열심히 도와서 살림을 일구었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도 시간나는 대로 정비소에 나가서 직원들 간식도 챙겨주고 청소도 하고 경리일도 거들면서 돈을 벌었다.

남편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아들로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해서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결혼을 하자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였는지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가 이런 고부갈등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남편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조정자 역할도 하지 못하면서 힘들어 했다.

그렇게 고부갈등 사이에서 방황하던 남편은 언제부터인가는 아예 갈등상황에 끼어들지 않는 방법을 가능한 집에 머무르지 않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남편은 가능한 일찍 집에서 나가고 가능한 늦게 술에 취해서 귀가해서는 무조건 아내에게만 어머니에게 잘하라고 타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녀는 집에서 시어머니와 하루종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남편은 아예 밖으로 돌면서 집안 일은 나몰라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3년 전에 이혼소송을 제기한 경험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단 아내에게 잘못하였다고 사과하고 재산도 처에게 공동명의로 해주고 월 생활비도 정기적으로 지급한다는 등의 약속을 함으로써 재결합을 하기로 조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 후에 들려오는 소식은 남편이 조정한 약속과는 달리 계속 다른 말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잘 양육해서 예술분야에 재능을 가진 딸은 피아노 콩클에서 수상도 하고, 아들은 수영선수로 전국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오기도 하는 등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해에 다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남편이 종전 이혼소송에서 조정시에 약속한 재산의 공동명의도 이행하지 않고 생활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요즘은 아내의 눈을 피해서 외도를 하는 것이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연녀와 카톡을 나누는 것을 확인하고서 였다. 남편과 내연녀는 하루에서 수십통의 문자와 사진교환등을 하면 은밀하면서도 진한 밀애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였는데, 주말이면 낚시를 간다면서 새벽같이 혼자 나갈 때는 늘 그 내연녀가 동행을 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새벽시간에 낚시를 간다면서 가방을 챙기면, 낚시터에 가면서 먹으라고 미숫가루에 찰떡까지 챙겨주고, 추우면 마시라고 따끈한 차까지 끓여서 보온병에 챙겨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준비해 준 음식을 내연녀와 나누어 먹으면서 신나게 놀다가 돌아와서는, 정작 아내를 냉대를 하였던 것을 생각하면서 그녀가 배신감에 떨어했을 상황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있을 것 같았다.

그녀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18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으로부터 수고한다든가 애쓴다든가 하는 따뜻한 말을 한마디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의 성격이 그런 애정표현을 못해서 그렇다고 위로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내연녀와 나누는 밀애문자에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글들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은 내연녀에게 ‘잘 잤느냐’에서 시작해서, 점심은 ‘뭘 먹을 것이냐’ 조그만 연락이 안되도 ‘뭐가 불편하냐. 내가 뭐 잘못한 거있냐’, 저녁에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감기들지 않게 이불을 잘 덮고 자라’는 것까지 그녀는 평생을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따뜻한 표현들을 주고 받았다. 그녀는 남자가 애정표현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는 알고는,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아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이혼소송을 취하하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녀는 남편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지만, 아이들이 지난 수 년 동안을 갖은 고생을 하면서 밤잠을 못자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연습을 하느라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이혼을 할 경우에 그 아이들을 뒷받침을 해 줄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아이들의 앞길을 막을 용기가 나지 않는 다고 했다.

신년 초에 기업의 수장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부분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기업 경영의 원칙이 이윤획득을 넘어서서, 사회적인 책임이 강조되어야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기업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 가정도, 가정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 까.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회가 건강할 수 없고, 국가가 안녕하지 못하다. 가정의 사회적인 기여는 심신이 건강한 부부가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서 시작된다. 그녀의 결심을 지지하면서 그 자녀들의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안귀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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